여유롭지만 지루하지는 않은 전원생활에 '대만족'
"준비는 철저히, 이웃 주민과 터놓고 살아야"
(장성=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퇴직하고 도시에 살면서 재취업했다면 월급 100만∼200만원 받겠죠. 저는 시골에 내려온 뒤로 사장이 됐어요. 오늘 못한 건 내일 할 수 있고, 용돈 벌이도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전남 장성군 북이면에 안착한 윤태홍(61) 씨에게서는 여유가 묻어났다.
윤씨는 30년 넘게 몸담은 교직에서 2014년 명예퇴직한 뒤 함께 교사 생활을 그만둔 아내와 귀촌했다.
퇴직을 결심하고 고향인 나주에서 담양, 장성까지 땅을 알아보고 집도 준비했지만 막상 뭘 하고 살지는 고민스러웠다.
농업기술원 교육에 참여해 배, 꽃, 허브 등을 접하면서도 익숙하지 않고 손도 많이 갈 일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침 TV에서 우연히 본 아로니아에 시선이 꽂혔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다른 농장 견학을 다녀와 보니 잘 자라는 품목인 듯해 '첫 도전'에 나섰다.
집 주변 산자락 2천600㎡에 1천 그루를 심어 지난해에는 열매 2t을 수확했다. 열매, 즙, 분말 형태로 1㎏에 1만원 가량 수입이 생겼다.
윤씨는 물리, 아내는 영어 교사였다. 전남, 서울, 광주에서 중·고생을 가르치다가 회의감이 들 무렵 귀촌을 결심했다.
집터 고르기에 6개월을 보내는 등 집을 짓는 데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땅을 사고 집을 짓느라 쓴 비용은 광주 중소형 아파트를 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전원주택이나 귀농·귀촌 관련 서적, 신문, 잡지를 섭렵하고 '통나무 학교'에 나가 집 짓기에 활용할 정보도 얻었다.
윤씨는 "집터를 고를때부터 집을 리모델링할지, 지을지 등 결정하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며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을 정도니 기회가 되면 '선배 귀촌인'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어보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여유로운 전원생활이지만 윤씨에게 지루할 틈은 없다. 광주에 있는 서예원에서 붓글씨를 쓰고, 작은 가구라도 직접 만들고 싶은 욕심에 목공예 공방에도 간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책을 보고 방장산 자락에서 산책한다. 요즘에는 모임에서 맹자를 공부하고 있어 예습도 해야 한다.
부부가 함께 연금을 받고, 신중하게 고른 땅은 가치가 오르고, 농사에도 순조롭게 적응했으니 윤씨에게는 노력뿐 아니라 좋은 조건과 행운도 따른 편이다.
다만 돈이 많다고, 조건이 좋다고 성공적인 귀농·귀촌이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윤씨는 강조했다.
윤씨는 "서울에 있는 친구가 돈으로 모두 해결하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을에 들어가서 이장 만나 마을발전 기금 몇백만원 내놓고 돼지 한 마리 잡으면 모두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며 "막걸리 한잔 하면서 마음의 벽을 먼저 허물어야만 적적하지 않게 이웃들과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귀촌인은 기존 주민들의 텃세를, 주민들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의 무례함을 꼬집지만 모두 소통이 부족해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농사가 빠진 귀촌만 생각했다가 작물을 재배하기로 하면서 농업 교육을 함께 받은 '동료'를 얻고,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 알게 된 게 전원생활의 큰 자산이라고 윤씨는 뿌듯해했다.
sangwon7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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