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서 아내·자녀 둘과 생활"…혼자 부임 北외교관들과 대비
말레이 현지 일부매체, 리정철 고정간첩설 제기…"저항 없이 순순히 체포"
(베이징=연합뉴스) 김진방 특파원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살해 사건과 관련, 17일 체포된 북한 여권 소지 용의자인 리정철(47·Ri Jong Chol)의 정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말레이시아 중문지 동방(東方)일보는 이날 그가 아내와 자녀 둘이 있는 평범한 가장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리정철은 평소 중국어 등 외국어가 아닌 북한말을 사용했으며, 아내와 자녀 두 명과 함께 생활했다.
리씨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발급되는 말레이시아 신분증인 'i-Kad'를 소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국에서 일하는 외국 노동자들에게 발급하는 것으로 개인 정보와 일하는 회사명 등이 기재돼 있다. 말레이시아 이민국은 1년 기한의 노동허가를 매년 갱신한다.
이로 볼 때 리정철은 북한 국적의 말레이시아 파견 노동자 신분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파견노동자 신분인데도 아내와 자녀 둘이라는 가족을 동반해 최소 수년간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일종의 외화벌이 노동자인 그가 가족과 함께 외국 생활을 한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은 자국민의 이탈을 우려해 외국으로 보내는 돈벌이 노동자는 물론 외교관에 대해서도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가족을 동반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외교관들도 단신 부임해 대사관 또는 일정 주거 공관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리정철이 외화벌이 파견노동자 신분으로 그런 '호사'를 누렸다면 뭔가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리정철 주거지의 주변인물들의 평(評)도 주의깊에 들어볼 필요가 있다.
동방일보에 따르면 아파트의 이웃들은 리정철의 체포 소식에 "그가 특수요원이거나 사람을 죽였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웃들은 "그는 17살짜리 아들과 10살 딸, 40대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며 "그들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자주 들었지만, 그게 한국말인지 북한말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이어 "그는 평범한 가장처럼 생활했다"며 "외부인을 만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이상한 느낌도 없었다"고 리정철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웃들이 보기에는 리정철이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는 북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현지에서도 김정남 독극물 암살사건으로 북한 노동자와 외교관들의 거주 실태가 알려지면서, 북한 사정에 비춰볼 때 특수한 생활을 한 이정철이 고정간첩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가 말레이시아에서 파견 노동자로 신분을 유지하면서, 정보수집 등의 간첩활동을 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리정철의 가족 역시 '위장'일 수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리정철이 검거될 당시 상황을 목격한 이웃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 같은 추측이 어느 정도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
리정철은 이 아파트에서 1년 여간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들의 증언에 따르면 검거 당시 10여 명의 경찰이 이 아파트 4층에 있는 리정택의 자택에 들이닥쳤고, 리정철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검거 현장에 있던 한 이웃은 "리정철은 경찰을 따라 순순히 경찰차에 탔으며, 아내와 자녀들 역시 리정철이 경찰에 체포되는 모습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담담히 지켜봤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앞서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리정철을 포함해 베트남 여권 소지자 도안 티 흐엉(29)과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25) 등 여성 용의자 2명, 시티 아이샤의 말레이시아인 남자친구를 체포한 바 있다.
이로써 경찰은 암살 사건과 관련돼 총 4명의 용의자를 체포했으며 현재 도주 중인 나머지 남성 3명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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