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후원자 절실"…맥그린치 신부 평전 발간 기념행사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예수가 한 소년으로부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5천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에 비견할만 한 일들을 제주에서 행한 살아있는 성자(聖者)가 있다.
바로 '푸른 눈의 돼지 신부'로 불리는 맥그린치 신부(89·한국명 임피제)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54년 4월 한림본당에 부임해 60여년 간 제주에 머무르며 가톨릭 선교와 함께 주민들의 '자립'을 이끌어 오며 숱한 기적을 일궜다.
목축업이 발달한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는 한국 전쟁과 4·3사건 등으로 인해 극심한 경제난을 겪던 당시 제주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새끼를 밴 요크셔 돼지 한 마리를 인천에서 구입해 한림까지 가져 왔다.
이 돼지 한마리는 훗날 연간 3만 마리를 생산하는 아시아 최대 양돈목장의 기초이자 제주 근대 목축업의 기반이 됐다.
맥그린치 신부의 목장은 돼지에 그치지 않고 양과 소, 말까지 사육하는 한국 최대의 목장으로 거듭났다. 목축업을 기반으로 맥그린치 신부는 1천300명의 여성을 고용하는 한림수직을 설립하고, 병원, 양로원, 요양원, 유치원 등의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해 제주민들의 자립과 인간다운 삶을 도왔다.
얼마 전까지 제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왔던 맥그린치 신부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요즘 제주 사회가 돌봐야 할 '가난'의 형태 가운데 '죽음'에 주목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고 본 그는 죽음을 앞둔 가난한 병자들이 사회적 무관심과 지원부족으로 비참한 임종을 겪게 되는 것을 일종의 차별로 이해했고, 마지막 사업으로 호스피스 병원을 택했다.
호스피스란 임종기의 노인이나 말기암 등으로 죽음이 임박한 환자를 입원시켜 불필요한 연명 치료보다는 고통 덜어주기 위한 보호를 중심으로 가족과의 자유로운 만남, 종교 활동 등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꾀하도록 돕는 시설 또는 활동을 뜻한다.
맥그린치 신부는 1970년 4월 개원해 제주 서부권 지역의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해오던 성이시돌 의원을 2002년 3월 호스피스 중심의 성이시돌 복지의원으로 재개원해 삶의 끝자락에 선 가난한 이웃들에게 집중하도록 했다.
2007년 한림읍 금악리로 이전한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대지 4천60㎡, 건축면적 1천400㎡의 1층 건물로 10개 병실과 20개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임종을 목전에 둔 이들을 위한 방도 따로 마련돼 있다.
병원은 현재 후원회원들의 도움과 사료공장 및 종마사업을 운영하는 이시돌농촌사업개발협회의 지원으로 전액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2천여명 후원자들의 소액 기부와 기업 기부 중심으로 마련된 운영비를 기본으로 이시돌농촌사업개발협회가 모자라는 부분을 지원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2016년 기준으로 전체 운영비 약 7억원 가운데 기부금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를 이시돌농촌사업개발협회가 지원했다. 개인 후원자들의 절반은 도민이다.
18일 오후 제주시 건입동 김만덕기념관에서는 맥그린치 신부가 공들여온 마지막 사업인 성이시돌 복지의원에 대한 후원을 독려하고, 그의 업적을 기록한 평전 발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원희룡 제주지사, 신관홍 제주도의회 의장을 비롯해 도민 4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과보고, 기념사, 축사, 답사, 평전 헌정식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박승준 맥그린치신부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기념사에서 "맥그린치 신부는 60여년 이상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지역개발, 복지사업을 통해 제주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며 "맥그린치 신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청년들이 제2, 제3의 맥그린치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원희룡 지사는 축사에서 "한 순간 봉사하기도 쉽지 않은데 아일랜드에서 지구 반대편에 가까운 제주까지 와 60여년을 지역민들을 위해 오롯이 봉사한 맥그린치 신부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맥그린치 신부의 뜻을 이어 평전 발간이 맥그린치 신부의 헌신과 사랑을 세상에 퍼트리는 불씨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고,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말이 잘 안나온다"며 자연스러운 우리 말로 너스레를 떨며 답사에 나선 맥그린치 신부는 1954년 한림성당 신축 당시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건축 자재로 쓸 나무가 없어 전전긍긍하다 때마침 좌초된 9천t 짜리 미국 군수물자 수송선에서 목재를 얻어 신자도 아닌 수백명의 주민들의 도움으로 옮겨와 성당을 지을 수 있었다"며 자신이 경험한 첫번째 '기적'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이어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도민 가운데 3천명만 1천원, 3천원, 5천원씩만 성이시돌 복지의원을 후원한다면 호스피스 병동의 재정 걱정은 전혀 없을 것"이라며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 줄 것을 호소했다.
ji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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