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상 외국인 근로자 신분의 일반 가정…"아내, 자녀도 있고 한국어 써"
'단신부임·단체생활' 원칙 벗어난 독립적 가정생활 의문…신분위장 공작원 가능성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김정남 살해용의자로 체포된 북한 국적자 리정철(46)은 외형상 평범한 외국인 근로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연합뉴스 기자가 18일 오후(현지시간) 찾아간 리정철의 주거지는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남쪽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리정철은 지상 15층짜리 D콘도미니엄의 4층에 살고 있었다. 지은 지 오래돼 보였으며 주변의 다른 아파트와 비교하면 허름했다. 월세는 약 1천500링깃(약 39만 원)으로 그 지역에서는 싼 편이라고 한다.
D콘도미니엄에는 주로 중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리정철은 이 틈에서 별다른 눈에 띄지 않는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면 별도의 출입카드가 있어야 해 외부인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리정철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발급되는 신분증인 'i-Kad'를 소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류상으로 북한 국적의 말레이시아 파견 노동자 신분인 셈이다.
그는 부인과 자녀와 함께 살고 있어 이웃들에게는 일반 가정과 다를 바 없이 비쳤다.
아파트 앞에서 만난 20대 주민은 "리정철이라는 사람을 모르지만, 김정남 암살 사건에 연루됐다고 하니 놀랍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도 리정철에 관해 묻자 손사래를 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웃 주민들은 "리정철이 아들과 10살 딸, 40대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며 "그들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자주 들었지만, 그게 한국말인지 북한말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현지 중문 매체인 동방일보가 전했다.
주민들은 또 "그가 평범한 가장처럼 생활했다"며 "외부인을 만나는 모습을 본적도 없고, 이상한 느낌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파견 근로자 신분의 리정철이 독립적인 거주 생활을 한 데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외교관과 해외근로자들은 가족 없는 단신 부임이 원칙이고 단체생활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들과 외교관들의 잇따른 탈출 이후 북한 보위성을 중심으로 감시가 더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리정철이 가족까지 거느리고 독립생활을 한 것이 맞는다면 근로자 신분을 위장한 공작원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대북소식통은 "리정철이 일반 외국인 근로자로 신분을 숨기고 말레이시아에 장기 거주하면서 북한에서 임무수행을 위해 파견되는 요원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현지 매체인 더 스타 온라인은 정보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말레이시아에서 활동하는 북한 정찰총국 고위급 간부와 요원들은 엔지니어나 건설 기술자문, 식당 운영자 등으로 신분을 숨기기도 한다고 보도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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