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구제역 휩쓸고 쌀·과일값 폭락…겹겹 악재 농촌 '시름'

입력 2017-02-20 04:22   수정 2017-02-20 08:36

AI·구제역 휩쓸고 쌀·과일값 폭락…겹겹 악재 농촌 '시름'

3천만 마리 살처분 양계농가 재입식도 못해…구제역에 한우 매출 급감

소비 부진 쌀·과일 재고 산더미…의욕 잃은 농민들 "출구 없다" 탄식

(전국종합=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풍년의 희망을 품고 한해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지만, 잇따라 터진 악재에 농민들은 의욕을 잃었다. 농자재를 챙기는 손에는 힘이 빠졌다. 몸을 곧추고 마음을 다잡아봐도 도통 흥이 나지 않는다.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등 쓰나미처럼 들이닥친 가축 전염병 탓에 자식 같은 닭과 오리, 소가 대량 살처분됐다. 소비자들의 불안감까지 커진 탓에 매출이 급락, 가축 사육 기반이 무너질 지경에 처했다.

과일 역시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선물 수요가 줄고, 저렴한 외국산에 밀려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가격을 내려봐도 판로가 막힌 원예농가들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식량 안보'의 대표주자로 불렸던 쌀도 사정은 비슷하다. 소비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생산량은 늘면서 가격이 곤두박질쳐 벼 재배농가들이 '풍년의 역설'에 고통스러워한다.

온통 악재뿐인 잿빛 들녘에서 영농철을 맞이하는 농민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거나 "희망이 없다"고 탄식한다.


◇ 가금류 3천300만마리, 소 1천400마리 살처분한 축산 농가 '휘청'

가축 질병에 타격을 받은 축산 농가는 재기를 위한 외로운 씨름을 하고 있다.

올겨울 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AI로 전국 340개 가금류 사육 농가에서 닭과 오리 3천300만마리가 살처분됐다.

다행히 올해 들어 추가 발생은 없었지만, 'AI 쓰나미'가 휩쓸고 간 가금류 농가는 아직 재입식을 못하는 상태다.

다시 병아리를 들여오려면 추가 발병이 없어 이동 제한 조치가 풀려야 하고, 환경 위생검사를 통과한 뒤 축사당 5마리의 오리를 21일간 키우는 방식의 입식 시험에서 이상 징후가 없어야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AI 피해 농가의 재입식은 빨라도 한 달 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자식처럼 키운 소 1천400마리를 땅에 묻은 한우·젖소 농가는 매몰한 소뿐 아니라 판로까지 막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충북 보은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지난 5일 이후 국내산 쇠고기의 매출이 크게 줄고 수입산 매출은 늘었다.

최근 한 대형마트에서 국내산 쇠고기 매출이 20% 가까이 감소했지만 수입산 쇠고기 매출은 12% 늘었다.

돼지 구제역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돼지고기 역시 수입산을 찾는 소비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 '하루 밥 두 공기도 안 먹어'…쌀값 폭락에 농가 실의에 빠져

쌀 소비가 30년 전보다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지면서 농가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61.9㎏으로 30년 전인 1986년(127.7㎏)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비가 줄면서 전체 쌀 수요가 감소, 가격이 내려가는 악순환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통계청이 조사한 산지 쌀값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2만8천496원이다. 21년 만에 심리적 마지노선인 13만 원대가 붕괴했다.

지난해 농가교역조건지수가 103.7로 전년 대비 0.7%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가교역조건지수는 생산·판매하는 농산물과 농가가 구매하는 농기자재 또는 생활용품의 가격 상승 폭을 비교, 농가의 채산성을 따지는 지표다.

농가교역조건지수가 하락한 것은 농가구입가격지수는 상승했지만, 농가판매가격지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판매가격지수 하락은 9.4% 급락한 곡물이 주도했다. 특히 일반미(-11.7%), 찹쌀(-5.8%) 등 미곡류의 하락 폭이 컸다.

쌀값 폭락이 실제 농가 살림살이에 직격탄이 된 셈이다.

황금 들녘으로 넘실대는 대풍의 꿈을 품고 영농철을 맞이할 시기이지만, 농가들은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벼 생산면적을 줄이는 것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 과일도 안 팔린다…불황·청탁금지법·수입과일 '겹악재'

경기 불황에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선물 수요까지 줄면서 과일 판매도 급감했다.





이맘때면 전년 가을 수확한 사과가 90%가량 출하되는 게 보통이지만, 올해는 농가마다 재고가 40∼50% 정도 쌓여 있다.

저장고 과일은 출하가 늦어질수록 상품성이 떨어지지만, 과수 농가와 유통센터마다 사과, 배 등 안 팔린 과일이 넘쳐난다.

충북원예농협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에도 공판장용 콘티박스 18만개 분량의 사과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충주 APC는 대형 할인점인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에 사과를 공급하는데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전년 대비 월별 매출이 30%씩 줄었다.

전국 농협 하나로마트의 올해 설 특판 실적을 보면, 과일 판매 금액은 303억원으로 지난해 설의 375억원보다 20% 가까이 감소했다.

오렌지, 바나나 등 비교적 값싸고 당도가 높은 외국산 과일이 빠른 속도로 대체하는 것도 국내 과수농가에는 악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격이 급락했다.

10㎏들이 한 상자에 3만원 정도는 돼야 포장비, 운송비를 제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데, 현재는 2만원대 초반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된다. 브랜드와 품질에 따라 1만5천원 안팎인 상품도 있다.

농가들은 출혈을 감수하고 할인 판매나 가공용 처분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자칫 쌓아놓은 과일을 썩혀 폐기하는 최악의 처지에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농협 관계자는 "쌀값 하락에 과일 판로가 막히고 사상 유례없는 가축 전염병이 휩쓰는 등 악재가 한꺼번에 터지는 바람에 농촌은 지금 최악의 상황"이라며 "수입 시장 확대로 농업 환경까지 갈수록 악화하면서 농업 기반이 흔들릴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logo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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