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한국 정부 결탁해 거짓선동"…말레이와 공동수사 요구
'김정남' 아닌 '김철' 주장…'북한 배후' 의혹 흐리기 시도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을 둘러싸고 말레이시아를 겨냥해 두번째 포문을 열었다.
지난 17일 말레이시아 당국의 부검 강행과 시신 인도를 트집잡아 한밤중에 돌발 기자회견을 한 지 사흘만이다.
강 대사는 20일 말레이시아 외교부에 소환돼 비공개회의를 한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전날 말레이 경찰이 발표한 수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북한 배후설도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는 우선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의 이번 수사가 '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공세를 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전날 사건발생후 첫 기자회견을 열어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리정철(46) 이외에 4명의 북한 국적의 용의자가 더 있다면서, 사실상 북한을 배후로 지목했다.
이에대해 강 대사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어제 회견에서 거짓 주장을 했다. 말레이시아의 이런 불공정한 행위와 주장의 모순을 폭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당국의 이 같은 입장을 앞서 열린 비공개회의를 통해 말레이시아 외교부에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강대사는 그러면서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 배후에 다른 세력이 있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애초 말레이시아 부총리가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망자 시신을 넘겨주겠다고 말했으나, 경찰 당국이 사망자 가족의 DNA 제출을 요구하며 거부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앞서 지난 17일 밤 돌발 기자회견 당시 했던 발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 대사는 이어 피살된 북한 국적자의 여권상 이름이 김정남이 아닌 김철이라는 점에 집착했다.
그는 "우리는 이미 사망자의 신원이 여권에 명시된 대로 '김철'이라고 확인했지만, 말레이시아 경찰은 사인과 용의자의 범죄 혐의를 확인하지 못한 채 북한에 적대적인 세력이 주장하는 사망자의 다른 이름(김정남)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철과 김정남이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이번 사건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이 개입됐을 것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로 풀이됐다.
강 대사는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과정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처음 심장마비로 공항에서 실신한 북한 외교여권 소지자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자연사했다고 북한 대사관에 알렸다. 그러나 사건 발생 후 7일이 지났음에도 아직 사인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전혀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사 결과를 믿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술 더 떠서 "이런 상황은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가 사인과 용의자 수색이 아닌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입증한다"고도 했다.
또 강 대사는 사망자 신원과 시신 인도를 위해 가족 DNA를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강 대사는 "사망자가 일반 시민이 아니라 외교 여권을 소지했다면 빈 조약에 따라 특권을 지닌 사람"이라며 "이런 사람의 시신 인도에 가족 DNA를 요구한다는 점이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외교 인사의 시신을 인도하지 않고 유족의 유전자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국내법을 국제법보다 우위로 보는 것이며, 이런 입장의 배후에 '정치적 음모'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다.
그는 "말레이시아에 있던 북한 국민이 살해됐다. 책임은 완전히 말레이시아에 있다"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발언에 이어, "여성 용의자에게 살해됐는지 경찰이 진짜 사인을 숨기기 위해 용의자를 조작했는지 의문이 많다"며 위험수위을 넘나드는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강 대사는 이어 북한 배후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반응을 드러냈고, 한국과 말레이시아 정부가 이번 사건을 조작했다는 주장까지 쏟아냈다.
그는 "용의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지시를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는 용의자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고 비아냥댔다.
강 대사는 "이번 사건의 유일한 혜택을 보는 것은 사상 최악의 정치적 혼란을 겪는 한국"이라며 "이번 사건은 미국이 한국 당국과 공조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밀어붙이려는 시도로도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DPRK(북한의 공식 명칭)는 주권국이지 피해국으로 어떠한 형태의 거짓 선동은 물론, 우리 시민을 두 차례 부검한 말레이시아의 인권 위반도 용납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대사는 끝으로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한 말레이시아 당국과 북한의 공동수사를 요구했다.
그는 "이번에 발생한 모든 사건이 한국과 결탁한 말레이시아가 정치화한 것"이라며 말레이시아 경찰과 공조해 사실관계를 밝힐 변호인단을 파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대사는 회견이 끝난 뒤 도피한 4명의 북한국적 용의자에 대한 한국기자들의 질문에 "용의자라고 보는 근거가 어디 있느냐, 무엇을 목표로 웅얼거리나"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이들이 북한에 있는지 묻자 "내게 묻지 말라. 확인해야 답할 수 있다"고 응했다.
한편, 북한 대사관 정문에서 열린 이날 회견에는 내외신 기자 200여명이 모여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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