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16년 전이다. KBS 2TV가 주말극으로 편성했던 '푸른 안개'가 사회적으로 논란을 낳았다.
이경영과 이요원이 주연을 맡고 관록의 작가 이금림이 쓴 작품이다. 성공한 40대 중반의 남자와 20대 초반 미혼 여성의 사랑을 그렸다. '사랑'이라고 했지만 '불륜'이었고, 심지어 '원조교제'가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불륜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듯 시청률도 낮았다.
세월이 흘러 홍상수(57) 감독과 스물두살 어린 배우 김민희(35)의 '야릇한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엊그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김민희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는 두 사람을 둘러싼 소문처럼 여배우와 유부남 감독의 불륜을 그린다. "영화라기보다 다큐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예술이 불륜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비난이 이어진다.
그러나 둘은 공개석상에서 '당당'하다.
격세지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예계에서 불륜은 고개도 못 들 일이었다. 간통죄의 영향이 컸고, 유교문화가 지배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러했다. 간통죄로 경찰에 잡혀가기 전까지는 언론에서 다루지도 못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고 드라마를 보는 눈도 바뀌었다. 지난해 포털사이트를 신나게 돌아다니던 홍상수-김민희를 둘러싼 온갖 이야기와 보도는 이번 베를린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아예 '주요 뉴스'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홍상수-김민희는 불륜설을 시인도 부인도 안하면서 '당당'하게 계속 영화를 찍어나갔다.
'푸른 안개' 이후 드라마계의 대모 김수현 작가는 '내 남자의 여자'(2007)를 통해 불륜을 정면으로 다뤘다. 정성주 작가는 '밀회'(2014)에서 어린 총각과 스무살 연상 유부녀의 격정적 사랑을 그렸다.
2001년 '푸른 안개' 때와 달리 이 두 드라마는 높은 인기를 끌었다.
그럼에도 아직 '현실'은 다른 문제인 모양이다. 홍상수-김민희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연예계에서 여배우와 감독의 사랑은 역사도 깊고, 알게 모르게 '빈번'하다.
지난달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 홍보차 내한한 할리우드 스타 밀라 요보비치는 두 명의 감독과 사랑에 빠졌다. 자신을 스타덤에 올린 '제5원소'의 뤽 베송 감독과 결혼했다가 이혼 한 뒤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폴 앤더슨 감독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한 사랑에는 대가가 따르기도 한다.
'세기의 연인' 잉그리드 버그만은 남편과 딸을 버리고 이탈리아 유부남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를 택했다가 결국 이별했다. 1950년 전후의 보수적인 미국 사회는 '불륜'을 한 버그만을 비난했고, 로셀리니의 잇단 영화 실패로 경제난에 허덕이던 버그만이 할리우드에서 재기하기까지는 10년 가까이 걸렸다.
홍상수 감독은 현재 아내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민희는 베를린영화제 수상 소감에서 "감독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둘의 이야기가 어떤 끝맺음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와 드라마에서, 또 현실에서 불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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