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11시 10분부터 20분간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양해해 주십시오."
제8회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키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열린 20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의 시라하타야마 오픈 스타디움 기자실에 들어서자마자 조직위원회 관계자가 가장 먼저 공지한 말이다.
오전 11시 10분부터 30분까지, 또 낮 12시 15분부터 12시 35분까지 기자실에서 경기장으로 이동할 수 없다고 했다.
즉 기자실에 있을 거라면 계속 기자실에 머물러야 하고, 공동취재구역이나 경기장 관중석에 머문다고 하면 해당 시간에는 기자실로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였다.
11시부터 여자 16강전이 열리고 남자 16강전은 11시 20분부터 시작되는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또 여자 결승은 12시 10분, 남자 결승은 12시 20분에 출발해 5분 이내에 끝나기 때문에 '통행 금지령'이 내려진 시간에는 기자들이 한창 공동 취재구역과 기자실을 오가며 바삐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해당 시간에 경기장 내 움직임을 통제한 이유는 이날 경기장에 나루히토 일본 왕세자가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일본 왕위 계승 서열 1순위로 아키히토 일왕이 지난해 퇴위 의향을 표명함에 따라 2019년부터 왕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인물이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또 안내문을 통해 "이번 대회 취재 승인을 받은 기자라 하더라도 나루히토 왕세자를 촬영하는 것은 삼가 달라. 왕실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사진을 찍게 되어 있다"고 공지했다.
물론 국내에서도 전국체육대회 개회식 등에 대통령이 참석할 경우 주변을 통제하는 등 대규모 행사에서 VIP들을 위한 경호 조치는 일반적인 관례로 볼 수 있다.
1982년 국내 프로야구 개막전에는 대통령 시구를 위해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에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경호원들이 심판 복장을 하고 그라운드에서 대기했다는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전해진다.
하지만 최근 국제종합대회에서는 VIP 경호를 이유로 지나치게 통제하는 분위기는 상당히 완화되는 추세다.
특히 금메달이 결정되는 시간대에 관중이나 기자들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 아니다.
크로스컨트리 남자 결승전을 취재하기 위해 예정된 '통행금지' 시작 시간인 12시 15분보다 약 3분 앞서 미리 이동하려던 기자는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았다.
"아직 12시 15분이 안 되지 않았다"고 항의하자 이 관계자들은 결국 평소에는 미디어 관계자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통로를 개방해 대신 그쪽으로 지나가라고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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