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담긴 싱글 '림보'…"정규 앨범은 야심작, 영어권 프로젝트도 계획"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아르앤드비(R&B) 싱어송라이터 딘(본명 권혁·25)은 평소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놓는다. 벨소리가 신경 쓰일 때 바꿔놓는 진동 모드조차 거슬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주변인들과 통화 연결이 잘 안 된다. 예민한 편이다.
이 예민함은 음악 작업에서도 고집스럽게 드러난다. 여느 뮤지션들과 달리 작업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다.
이미 그는 지난해 3월 미니앨범 '130 무드:트러블'(130 mood:TRBL)을 통해 마치 한편의 B급 스릴러물처럼 음악, 트랙 구성, 재킷, 속지까지 퍼즐 조각을 맞추듯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과 사운드를 구현했다. 그의 독창성이 공감을 얻었는지 타이틀곡 'D'는 차트를 역주행해 최고순위 5위까지 올라간 뒤 1년간 음원차트 100위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앨범의 스토리텔링을 중요시하는 그가 1년여 만에 컴백하면서 이번에는 싱글을 택했다. 첫 곡 '불청객'과 타이틀곡 '넘어와' 등 2곡이 담긴 싱글 제목은 '림보'(limbo).
단 2곡으로 그의 음악 작법이 제대로 작동됐을지 우려했지만, 디테일한 상황과 장치를 촘촘히 배치하는 영특함은 이번에도 빛났다.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만난 그는 "음반을 만들 때 시나리오 작업부터 하는데 영화 '인셉션'(Inception)에서 영감을 받았다"며 "영화에는 자각몽(自覺夢)처럼 현실과 꿈이 구분되지 않는 '림보'란 상태가 등장한다. 여기서 착안해 스토리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트랙의 배치는 곧 스토리의 연결장치다.
불현듯 떠오른 옛 연인과의 기억을 되새기다 잠으로 빠져든('불청객') 화자가 설레던 때를 회상하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난다('넘어와')는 전개다. 담뱃불을 붙이는 소리, 꿈으로 빠져드는 듯한 노이즈 등 여러 효과음이 눈앞에 상황이 그려지듯 입체감을 살린다.
"'불청객'은 옛 연인에 대한 기억을 뜻하죠. 암울한 기억을 떠올리다가 꿈에 진입하는 단계를 표현하려고 '넘어와' 도입부에 30초가량 이명 같은 몽환적인 노이즈를 넣었습니다. 이 30초는 감상용으로는 리스크가 있지만 스토리가 중요해 무리하게 담았어요. 곡의 마지막 부분에선 꿈에서 깨는듯한 아련한 느낌을 살렸고요."
직접 디자인한 재킷에도 스토리를 함축적으로 담았다. 풍선이 비친 깨진 거울은 부푼 꿈이 엎질러진 과거를 뜻하는데 그 위로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처럼 영문이 흐른다. '인셉션'에서 나온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대사를 담았다고.
그는 "관객이 엔딩 크레디트를 보며 영화를 돌아보듯이 사람들에게 각자의 사랑을 한 번쯤 뒤돌아보게 하고 싶었다"며 "나도 연애는 적당하게 해봤는데 더 해보고 싶다"고 웃었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허를 찌른다.
특기인 최신 흑인 음악 사운드를 담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불청객'에서는 피아노 선율에 보컬만 얹어 아날로그 질감을 냈다. "스테레오(입체음향) 음원을 모노(사운드가 하나의 채널에 형성되는 것)로 바꿔 녹음기로 녹음한 듯 복고적인 사운드를 냈다"고 한다. 비극적인 무드로 이어질 것 같은 '넘어와'에선 백예린과의 듀엣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뤄 반전을 줬다.
이토록 품이 드는 작업 과정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제 감정의 기록물을 오래오래 소중하게 남기고 싶어요. 작년 말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했는데 감정의 격동이 심해 저를 돌아보게 됐죠. '뭘 할 때 가장 행복할까' 생각해보니 작가나 영화감독처럼 저도 메시지를 작품에 실어 좋은 여운을 주는 것이었어요."
그는 이어 "제 인스타그램 아이디 등에 요즘 '딘트러블'(deantrbl)이라고 많이 쓴다"며 "사건(트러블)은 쉽게 잊히지 않듯이 충격을 받으면 잔향이나 여운이 오래 남지 않나. 나도 스토리텔링이 담긴 뒤통수 치는 음악으로 긴 여운을 주고 싶다. 지금은 차트에서 새로운 물결이 들어오면 금방 잊히는 시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딘은 아직 대중적인 '전국구' 뮤지션은 아니다. 그러나 업계에서 그의 밀도 높은 감성은 '딘플루엔자'(Deanfluenza)란 작곡 필명처럼 퍼져있다.
그는 2015년 가수 데뷔 전 줌바스뮤직그룹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며 엑소, 빅스 등의 곡을 만들어 프로듀싱 역량을 인정받았다. 지문처럼 또렷한 음색과 1950년대 할리우드 배우 '제임스 딘'에서 따온 예명처럼 뻔한 것을 싫어하는 반항적인 이미지까지 겸비해 대형 기획사들도 탐내는 재목으로 떠올랐다.
또 블락비의 지코, 크러쉬 등과 크루 '팬시차일드'(Fanxy Child)를 결성한 그는 가수들 사이에서도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정작 새 음반을 내면 별다른 방송 활동이 없다.
그는 "방송에 거부감은 없다"면서도 "뮤지션들은 각자 추구하는 무드가 있는데 방송에선 제작진의 의도가 들어가니 이미지를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다. 같은 음원도 가수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듯이 이미지나 선입견까지 모두 음악에 포함된다. 지금으로선 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 음악만으로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설명했다.
또 "작년 한 해 공연을 바삐 다니며 시선에 둘러싸인 시간을 보냈다"며 "일정대로 움직이면서 낯설고 어려운 느낌이 있더라"고 웃었다.
현재 그는 쉼없이 정규 앨범을 작업 중이다.
"정규 앨범에선 엄청나게 디테일한 상황과 장치를 넣을 건데 야심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시나리오가 있는데 기승전결이 있는 영화 각본처럼 만들어놨죠. 그 흐름에 따라 곡을 만들고 있어서 앨범 전체로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그는 이어 "이번 싱글이 지난해의 딘을 정리하는 것이라면 올해부터는 다른 모습과 행보를 보여주고 싶다"며 "영어권에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국 시장을 넘어 해외에서도 새로운 사운드와 스토리텔링을 추구하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싶다"고 강조했다.
해외 유수의 시상식을 누비는 큰 포부가 있느냐고 묻자 "목표가 상이 될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셰익스피어 하면 작품이 떠오르듯이, 딘 하면 시그니처처럼 떠오르는 사운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고 그걸 꾸준히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mim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