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규·관행 무시하는 北…'뿔난' 말레이시아 "더는 용납못해"

입력 2017-02-21 12:57   수정 2017-02-21 15:37

법규·관행 무시하는 北…'뿔난' 말레이시아 "더는 용납못해"

북한, 국제법 위반까지 들며 '김정남 암살' 수사·신원 확인 '방해'

말레이, 北 모욕적 행위 비판…"법·원칙 따른 수사, 北대사관은 협조해야"

(쿠알라룸푸르·하노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김문성 특파원 = 김정남 암살 사건 초기만 해도 북한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 말레이시아가 대북 강경 모드로 완전히 돌아섰다.

남북한 공동 수교국으로 중립적인 외교노선을 걷는다는 평가를 받는 말레이시아이지만 양국 관계가 벼랑 끝으로 몰리더라도 자국 법규와 외교관행을 무시하는 북한의 언행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두 나라 관계가 김정남 피살 사건의 처리를 놓고 기자회견과 성명 등을 통해 공방을 벌이며 경색되는 가운데 그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일반적 시각이다.





북한 정부를 대신해 이번 사건에 대처하는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의 행보는 상대국 입장에서 법규나 외교관행상 수용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는다.

북한대사관은 지난 13일 김정남이 숨진 것으로 알려지자 부검에 반대하며 시신 인도를 요구했으나 말레이시아 경찰은 거절했다.

그러자 강 대사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기초적인 국제법과 영사법을 무시하는 행위로 인권 침해이며 우리 시민에 대한 법적 권리의 제한"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적대적 세력과 결탁했다는 근거 없는 발언까지 했다.

이 때문에 강 대사는 20일 말레이시아 외교부에 소환돼 항의와 함께 경고를 받았지만, 곧바로 기자회견을 또 열어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더 높였다.

그는 숨진 북한인(김정남)이 외교특권이 있는 외교여권 소지자로, 여권상 '김철'이라며 시신의 유가족 인도 원칙과 DNA 검사를 통한 신원 확인 등 현지 경찰의 사건 처리 방식에 대해 '외교관계에 대한 빈협약'과 국제법 위반까지 거론했다.

그러나 한 외교관은 21일 "빈 협약을 비롯한 국제법적으로 강 대사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며 "오히려 말레이시아 법규와 외교관행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상 한 국가에서 외국인이 사망하면 현지 경찰은 관행상 해당국 대사관에 통보한다. 외국인 체포·구금의 경우에는 해당 외국인이 원하면 대사관에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여권상 '김철'이라는 이름의 북한 국적자가 숨지자 북한대사관에 통보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북한대사관은 "공항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 자연사했다"는 경찰의 통보 내용을 들어 부검에 반대하며 시신 인도를 요구했다.





그러나 '김철'의 실제 이름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으로 알려지고 사망 직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의 폐쇄회로(CC) TV에 암살 정황이 포착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북한대사관의 반대에도 부검을 하고 북한 국적의 살해 용의자도 체포했다. 김정남 시신 인도는 유가족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유가족이 시신을 확인하고 넘겨받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형사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정남의 신원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북한 측이 '김철'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유가족의 DNA 채취를 통해 신원을 확정 지어야 하고 그래야 시신도 유가족에게 인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지난 19일 중간 수사결과 발표 때 피해자의 이름을 김정남이 아닌 여권상의 김철로 명시한 것도 그런 이유다.

해외 우리대사관에 근무하는 한 경찰영사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세계적 이목을 끄는 사건인 만큼 철저히 원칙에 따른 수사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대사관이 요구하는 공동 수사 역시 말레이시아 입장에서는 자국 경찰의 수사결과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부정하고 사법권과 주권을 침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고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20일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까지 나서 "우리 경찰과 의사들은 매우 매우 전문적"이라며 "그들이 객관성을 갖고 일을 한다는 데 절대적인 확신을 하고 있다"고 북한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말레이시아의 명확한 입장은 같은 날 외교부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강 대사의 비난에 대해 "말레이시아를 심각하게 모욕하는 것"이라며 자국 법규에 따른 조사, 주재국 정부에 대한 외국대사관들의 협조 관행을 강조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북한대사를 소환한 데 이어 평양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강수'를 둔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이번 사건을 놓고 계속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조작·결탁을 주장하며 자국 주권을 경시·무시하면 추가 대응 조치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meolakim@yna.co.kr hwangch@yna.co.kr kms123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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