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도왔는데 감히…" 각계 분노 잇단 표출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김정남 암살 사건과 관련해 말레이시아 사회에서 북한과의 관계 단절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랜 동맹인 북측을 수사 초기부터 여러 측면에서 배려했음에도, 적반하장 격으로 말레이시아 당국의 수사를 비난하는 행태에 국민감정이 심각하게 악화하면서 나오는 반응이다.
22일 일간 더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 대사의 성명은 전적으로 부적절하며 외교적으로 무례했다"고 말했다.
앞서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이달 17일과 20일 두 차례 기자회견을 하고 말레이시아가 한국 등 적대세력과 야합해 북한을 궁지에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맞서 나집 총리는 북측의 반발에도 말레이시아 당국은 "(수사와 관련해) 단호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북한과의 관계 재고 여부에 대한 질문에 "한 번에 한 단계씩" 대응하겠다고 답해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미 현지 전문가 집단에선 북한과의 단교에 따른 이해득실을 분석하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오 에이 순 태평양 연구센터 수석 자문위원은 "말레이시아는 매우 낮은 수준이나마 경제협력을 유지하고 있는 극소수의 국가"라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단절될 경우 북측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국제전략연구소(ISIS) 수석 애널리스트 샤흐리만 록먼은 "말레이시아 전체 무역에서 북한이 차지하는 비중은 5만 분의 1에 불과하다"면서 "단교시 경제적 충격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말레이시아와 소원해질 경우 여타 동남아 국가들도 북한에 잇따라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다"고 덧붙였다.
1980년대에 중국주재 대사를 지낸 30년 경력 말레이 전직 외교관 나두 단디스는 말레이 중문매체 성주일보(星洲日報) 기고문에서 북한과 말레이 수교관계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관광객 송출 '제로' 국가이며 북한 입국 관광객도 극소수에 그친다"며 "말레이시아가 수년 전 북한 노동자 300명을 받아 광부로 투입한 적은 있으나 지금까지 계속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수교) 관계가 말레이시아에 아무 이익도 되지 않는데 왜 말레이시아가 평양에 대사관을 둬야 하느냐"며 "말레이시아가 평양 대사관 문을 닫으면 실망감을 느끼는 국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지 남양상보(南洋商報)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양국 외교 갈등에 따라 무역과 안보 요인을 고려해 북한 무비자 입국 정책을 검토할 시점이라고도 지적한다.
말레이 북방대학의 국제정치 전문가 푸야아오스만 박사는 "말레이시아는 수시로 국내외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며 "국민 안전을 확보하지 못하면 수백만명의 관광객 유입 정책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말레이 전략·국제연구소(ISIS)의 사리만 연구원은 연구원 사리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북한에 무비자 혜택을 제공해 오는 혜택이 매우 적다"며 "우리와 북한의 양자 무역은 2천300만링깃(약 59억원) 밖에 되지 않고 말레이시아 대외무역 총액 1조5천만링깃(약 256조원)과 비교해 그 비율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북한과 줄곧 우호적 관계를 맺어 온 현지 화교사회도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말레이시아 화교연합회(MCA) 회장을 겸임 중인 리아우 티옹 라이 말레이시아 교통부 장관은 전날 MCA 사무실에서 직접 회의를 주재한 뒤 "북한 대사는 우리를 상대로 근거없는 비난을 해선 안 된다. 이는 매우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수피안 주소흐 말레이시아국제학연구소(IKMAS) 부소장은 말레이시아 국내에서 북한에 대한 반감이 들끓는 현상과 관련해 "북측은 우리의 선의를 몽땅 하수구에 쳐넣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1973년 북한과 국교를 수립했으며,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으로 동북아 지역에 갈등이 고조됐을 때는 미국과 북한간의 트랙2(민간채널 접촉) 창구 역할을 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상호 무비자 협정을 맺은 첫 국가이기도 하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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