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슨 장관도 발언 자제…"美 외교 주도권 잃을 수도"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세계 외교의 중심인 미국 국무부가 한 달 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고, 미·중 외교·통상 갈등이 불거지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이 혼선을 빚었지만, 국무부는 입을 열지 않았다.
국무부가 매일같이 하던 브리핑은 지난달 17일 이후 한 달 넘게 중단된 상태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이달 2일 취임한 후로는 그의 공식 활동조차 언론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 언론은 틸러슨 장관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통화한 사실을 러시아 외교부를 통해 확인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지도층과의 통화는 아랍권 통신사 보도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그러나 국무부는 통화 사실과 내용에 대한 미 언론의 확인 요청을 거부했다.
틸러슨 장관도 언론 접촉을 꺼리고 있다. 다자 외교 데뷔 무대로 지난 16~17일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서 틸러슨 장관은 언론의 질문에 전혀 답변하지 않았다. 미 언론은 "틸러슨 장관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50개도 안 된다"고 전했다.
CNN방송은 외교 사령부와 사령탑의 침묵에 미 외교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무부가 미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와 방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세계 외교 무대를 휘어잡긴커녕 침묵이 지속하면 오히려 다른 나라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제프 래스케 전 국무부 대변인은 "만약 국무부가 방송카메라 앞에 서지 않고 국제 현안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정책이 무엇인지를 세계에 이해시킬 기회뿐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무부의 침묵은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된' 혹은 '튀는' 외교 언사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을 향한 '하나의 중국' 불용인 발언, 이-팔 문제에 대한 '1국가 해법' 가능성 등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국무부의 기존 노선과 상충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P.J. 크롤리 전 국무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중에서 가식이 얼마만큼인지, 진짜 정책은 얼마만큼인지 혼돈스럽다"며 "우리는 트럼프 정부의 외교 정책이 정확히 뭔지를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말 발표한 '반이민' 행정명령이 주무부처인 국무부와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나오자 외교관들의 사기는 뚝 떨어졌다.
이슬람권 7개국 출신자에 대한 한시적 미국 입국 금지 조치로 세계 곳곳에서 혼란이 빚어졌지만, 틸러슨 장관은 한 마디도 공식 언급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틸러슨 장관이 석유회사 엑손모빌에서만 40년 넘게 근무한 '외교 문외한'이라는 점, 아직도 부장관, 차관, 차관보 등 실무관리를 지휘할 고위직이 공석이라는 점 등이 국무부 마비 사태의 이유로 꼽힌다.
현직 외교 관료는 CNN에 익명을 전제로 "지침이 없을 뿐 아니라 상의할 사람이 없다"며 "설령 상의하더라도 이분들이 이미 입을 다물라는 지시를 받은 터라 도저히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k02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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