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부인상점' 있던 자리…민족문제연구소, 기념 표석 건의하기로
(서울=연합뉴스) 채새롬 기자 =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특사로 파견됐던 이준 열사의 집터가 최초로 발굴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준 열사가 고종 황제에게 특사 신임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열사의 서울 종로구 안국동 집터를 발굴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열사는 1907년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됐지만 서구 열강의 외면과 일본의 방해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비분강개한 이 열사는 머물고 있던 호텔 방에서 순국했다.
헤이그 특사 사건의 역사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밀사'라는 특성 때문에 관련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 열사의 사위 유자후가 쓴 '이준선생전' 등에 이 열사의 자택 주소가 '북서 안현 11통 16호'로 적시돼 있지만 1910년 전후 일제식으로 지번주소체계가 바뀐 뒤에는 정확한 지번이 남겨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몇달에 걸쳐 당시 신문, 책, 토지대장 등 관련 자료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이준 열사의 집터가 우리나라 최초의 부인상점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도움됐다.
당시로서는 여성이 상점을 내고 영업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 열사의 후처 이일정(1935년 작고)이 1920년대 중국요리점 장송루 자리에서 최초로 잡화점을 운영했다는 자료가 남아있었다.
이를 토대로 파악한 결과 집터가 현재 안국동 152번지가 지번주소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공간은 중국인 마진림이 소유하다가 해방 이후 1964년 학교법인 덕성학원이 매입했고 1975년 '안국동 148번지'로 통합 말소된 이후 현재는 '해영회관'이 건립돼 있다.
발굴작업을 맡은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헤이그 사건의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관심이 덜했던 것 같다"며 "집터가 시내 중심가에 있는데도 어떤 자리인지 모르고 지내 왔는데 이번 계기로 공간의 역사적인 의미를 되살렸으면 한다"고 발굴의 의미를 설명했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우리 독립정신을 일상적으로 기린다는 의미에서 서울시에 집터 표석 설치를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srch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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