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밥상공동체 어르신 자활지원사업 '잼있는 일터'
(원주=연합뉴스) 류일형 기자 =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그저 고맙지요."
23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 일산로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 1층 '잼(ZAM) 있는 일터'.
70~80대 어르신 일곱분이 볼펜 조립과 티슈 포장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월~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잼있는 일터에 나와 일을 한다.
한쪽에서는 볼펜을 조립해 완제품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유소에서 제공되는 지갑형 티슈를 포장한다.
시장에서 직접 마늘을 가져와 까서 파는 소일거리로부터 시작된 일거리는 강아지 배변용 봉투를 포장하는 일, 콘센트·스프레이 조립, 박스 포장 등을 거쳐 지금은 볼펜과 티슈 조립만 하고 있다.
많을 때는 12명까지 일했으나 갈수록 일거리가 줄어들어 지금은 7명만 일하고 있다.
판촉용 상품으로 주유소에 납품하는 티슈도 여름철에는 티슈보다 생수로 많이 대체되기 때문에 일감이 줄어든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충분하지 못한 것이 노인일자리 활성화의 걸림돌이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 허기복 목사는 "어르신들이 할 수 있고 수익이 높은 일거리를 얻어 드리기 위해 직접 중소기업체들을 찾는 등 애를 쓰고 있으나 인식 부족 등으로 일감을 맡기려는 곳이 많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어르신들의 한 달 월급이라야 고작 12만~18만원 수준.
이곳에서 일한 지 10년째로 가장 고참인 김옥남(79) 할머니는 "약값밖에 안 돼요. 월급 좀 올려주라고 얘기해줘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 할머니는 그래도 밥상공동체에서 매일 공짜로 점심과 저녁 도시락을 주는 데다 월급날은 3㎏들이 쌀도 한 포씩 줘 좋다고 자랑했다.
할머니는 또 "전에는 엄지손가락이 아파 쥐었다 폈다를 못했는데 볼펜 조립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그런 것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9년째 티슈 포장일을 하는 임금순(73) 할머니는 "돈은 얼마 안 되지만 여기 나오면 말동무가 있어 좋고 시간이 잘 가서 좋다"며 웃어 보였다.
할머니는 또 "티슈 장수를 세느라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치매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웬만하면 자식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어르신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다 IMF 사태로 빚을 지고 주민등록까지 말소당해 정부 혜택을 받지 못하던 김순자(75) 할머니는 이곳에서 5년간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주민등록을 복원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해 회사에 취업하기도 했다고 허 대표는 귀띔했다.
잼있는 일터는 밥상공동체종합사회복지관이 복지관으로 개관하기 한참 전인 2002년 시작됐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일을 하실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 또는 일할 자리가 없는 어르신들을 돕기 위해 시작됐다.
허 대표는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어르신 일자리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사회적 인식이나 정부 차원의 관심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1998년 시민운동으로 설립된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은 무료급식, 잼있는 노인일터, 노숙인 자활쉼터 등을 운영하는 가운데 2002년 12월 원주지역에 처음으로 연탄은행을 설립, 현재 서울·인천·전주·부산 등 전국 31개 지역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등 해외에 연탄은행을 설립, 에너지빈곤층을 돕고 있다.
ryu62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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