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7위 4·3 영령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입력 2017-02-24 13:46  

"967위 4·3 영령들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서귀포시 남원읍 4·3 희생자 위령비 제막

(서귀포=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수악에서 이승이악에서 사려니악에서 붉은오름에서 물영아리오름 골짜기에서 두려움에 지쳐 쓰러져간 혼백의 비명…마을 들녘 감귤향이 온 동네에 퍼질 때면 그리운 부모형제 성님아우 삼촌조카 이웃친지 얼굴 찾아 이곳으로 달려 오세요"





24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돈물교 옆 소공원에서는 4·3 사건 당시 희생된 남원읍 주민들의 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비 제막식이 300여 명의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오승국 시인의 '진혼 서시'가 세찬 바람을 타고 공원에 울려 퍼지자 유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 훔쳤다.

7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령들의 안식처조차 제대로 마련치 못한 후손들은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행사는 제막, 국민의례, 경과보고, 주제사, 추도사, 헌화와 분향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현관철 남원읍 4·3 희생자 유족회장은 주제사에서 "위령비와 공원 조성으로 그간의 남원읍민 간 갈등을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승화해 주민 통합의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다짐하며 4·3 영령들의 영면을 기원했다.

이중환 서귀포시장은 추도사에서 "69년이 지난 지금도 슬픈 기억에 분노하고, 미안함으로 몸 둘 곳을 찾지 못하는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시고 계심에 어떠한 말도 위로와 치유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며 "이제는 과거의 아픔을 벗고 화해와 상생의 새 역사를 향해 도약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불현듯 끌려가시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채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님들의 잘못이 대체 무엇이냐"며 "부디 이곳에 좌정하시고 편안한 해원의 모금자리로 여기시고, 후손들이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굽어살펴달라"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서귀포)은 "부디 영령들께서 원통한 한은 짙푸른 제주 바다에 다 내려놓으시고, 제주도의 아름다움과 우리의 선한 마음만 기억하시어 편히 가시길 빈다"고 말했다.

추도사가 끝난 뒤 참석 주민들은 저마다 국화 한 송이를 위령비 제단에 바치고, 희생자들의 영면을 기도했다.

남원 지역 9개 마을에선 4.3 사건 당시 양민 967명이 영문도 모른 채 토벌대와, 무장대의 총칼 난동에 목숨을 빼앗겼다. 의귀리 한 마을에서만 250여명이 학살됐다. 의귀, 수망, 한남의 중산간 마을들은 초토화 작전으로 불바다가 되기도 했다.

ji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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