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부모 탈 쓴 '악마'…전국 곳곳 활개

입력 2017-02-26 06:00   수정 2017-02-26 11:40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부모 탈 쓴 '악마'…전국 곳곳 활개

작년부터 잇따른 아동 학대사건…올해도 부모 학대로 2명 숨져




(전국종합=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경기도 부천에서 남편과 함께 7살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뒤 장기간 집안 냉장고에 유기한 30대 여성은 범행 직후 시신 냄새를 없애기 위해 청국장을 부엌에서 끓였다. 학대로 스러진 아들에 대한 미안함보다 자신의 범행을 숨겨야 한다는 절박함이 앞선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는 16㎏에 불과한 아들이 90㎏의 건장한 체구인 남편에게 무차별적으로 맞아 숨진 당일 감기에 걸린 딸은 이비인후과 병원에 데려갔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매일 안방을 드나들면서도 학대를 당해 몸져누운 아들은 모른 척하던 그 엄마였다. 딸에게는 좋은 엄마였을지 몰라도 숨진 7살 아들에게는 악마 같은 존재였다.

부모의 탈을 쓴 악마는 지난해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 이후에도 전국 곳곳에서 활개 쳤다.

이 사건을 포함해 여러 잔혹한 아동학대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학대 피해자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동거녀의 학대에 시달리다가 가스 배관을 타고 집에서 탈출한 '인천 맨발소녀'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허겁지겁 과자를 집어 먹었다. 그 모습은 뉴스를 통해 안방에 전달됐고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후 정부가 장기결석 아동 전수 조사를 시작했고, 부천 초등생 사건도 이 과정에서 드러났다.

부천 초등생 사건 1심 재판부는 지난해 5월 선고 당시 "뒤늦게나마 이뤄진 장기결석 아동 조사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밝혀질 수 없었을 것이고 피해자는 계속 차가운 냉동실 안에 방치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기결석 아동 조사에도 아동학대의 고리는 끊기질 않았다. 지난해 2월 부천에서는 11개월간 미라 상태인 여중생 시신이 발견됐고, 3월에는 평택에서 락스와 찬물 학대 끝에 숨진 7살 원영이가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왔다.

원영이는 한겨울 트레이닝복만 입은 채 3개월간 화장실에 갇혀 지내며 두들겨 맞기를 반복했다. 밥과 반찬을 뒤섞은 식사를 하루 한 끼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줬다.

갓 태어난 '젖먹이'라고 학대 대상에서 제외되는 건 아니었다. 자녀를 제대로 부양할 의지나 환경을 갖추지 못한 채 출산한 '철부지' 부모는 아이를 성가신 존재로 여겼다.

한 20대 부부는 지난해 3월 부천시 자택 안방에서 생후 3개월 된 딸이 울음을 그치지 않자 1m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20대 아버지는 딸이 입에서 피를 흘리며 울자 작은방으로 데려가 재차 비슷한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뜨려 숨지게 했다. 부부는 딸이 숨지자 피 묻은 배냇저고리를 세탁기에 돌려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또 다른 20대 부부도 분유를 충분히 주지 않아 영양실조에 걸린 생후 66일 된 딸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해 징역 10∼13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길고 어두운 학대의 터널은 올해 초에도 이어졌다.

최근 경기도 이천에서는 잠을 자지 않고 보챈다는 이유로 3살 여자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친모와 외할머니가 경찰에 붙잡혔다.

나무 회초리와 훌라후프 등으로 하루에 1∼2시간가량 맞은 피해 아동의 사인은 전신 출혈로 인한 '실혈사(失血死)'였다.




지난 23일 전남 광양에서는 2살 아들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20대 아버지가 경찰에 구속됐다.

이 남성은 2014년 11월 27일께 여수시 봉강동 자신의 집에서 아들을 훈육한다며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아들이 숨지자 시신을 집에 이틀 동안 방치하다가 여수지역 바닷가 인근 산에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자녀를 학대하다 숨지게 한 뒤 범행 은폐를 위해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하는 수법은 최근 벌어진 상당수 학대사건의 공통점이다.

수사 초기 거짓말로 학대 사실을 숨기다가 경찰이 제시하는 각종 증거에 시신 유기 장소를 털어놓는 것도 짜 맞춘 듯 닮았다.

인천지법 부천지원 이언학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중학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1년 가까이 미라 상태로 집에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40대 목사와 계모의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2015년 사망 당시 13세)에게 쓴 편지를 직접 읽었다.

"우리가 너를 아픔과 고통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사랑하고 보고 싶은 엄마를 만나 행복하길 바라. 그리고 이 땅에서 더는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지켜봐 달라"

그러나 부모의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꼭꼭 숨겨진 채 부모의 모진 매질을 견디고 있을 수 있다.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연이어 아동학대 사건이 언론보도로 알려진 후 의심 신고가 많이 늘었고, 여전히 사각지대에 방치돼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며 주위의 작은 관심이 고통받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s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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