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점 의뢰인 900점 받기도…취업·승진에 실제로 활용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취업 준비생과 회사원 등 30여 명의 토익(TOEIC) 등 영어 능력 시험을 대신 쳐 원하는 점수를 받아주고 억대의 금품을 챙긴 30대 회사원이 쇠고랑을 찼다.
그는 의뢰인과 자신의 사진을 합성한 신분증을 이용해 3년 이상 시험 감독관들을 감쪽같이 속였다.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유명 외국계 제약회사 직원 김모(30) 씨를 구속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은 김씨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한 대학생 신모(25) 씨 등 취업 준비생 6명과 모 대기업에 다니면서 승진심사를 앞둔 이모(41)씨 등 회사원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2013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신씨 등을 대신해 토익(TOEIC), 토플(TOEFL), 텝스(TEPS), 오픽(OPIc), 토익 스피킹 등의 영어 능력 시험을 봐주고 회당 400만∼500만원, 모두 1억원가량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카투사(주한미군 근무 한국군)로 복무한 김씨는 신씨 등이 원하는 대로 800점(토익 기준) 이상의 고득점을 받아줬다.
그는 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모집한 신씨 등의 사진을 받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사진과 합성한 뒤 의뢰인들에게 운전면허증이나 주민등록증을 다시 발급받도록 했다.
김씨는 이렇게 재발급된 신분증으로 대리 응시했다. 일부 의뢰인은 시험 감독관의 의심을 받지 않도록 하려고 김씨에게 자신의 신용카드나 태권도 단증 등을 갖고 시험장에 들어가도록 하기도 했다.
김씨는 의뢰인의 점수가 갑자기 올라가면 의심받을 것을 우려해 여러 차례 대리시험으로 서서히 점수를 높여주거나 토익에서 토플 등으로 종목을 바꾸도록 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180점에 불과하던 의뢰인의 점수가 900점 이상으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의뢰인 가운데 6명은 이렇게 조작한 점수를 취업이나 승진심사에 실제 활용했다. 그러나 취업에 도전한 3명은 영어 능력을 직접 검증하는 면접에서 탈락했다.
승진심사에 활용한 회사원 3명 중에는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영어 능력 시험결과가 승진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김씨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한 10여 명을 추가로 조사하고 있어 전체 의뢰인은 30여 명, 김씨가 챙긴 돈은 1억5천만원 이상으로 추산했다.
김씨는 이렇게 챙긴 돈을 대부분 유흥비로 탕진했다.
경찰은 또 김씨에게 대리시험을 의뢰인 사람 가운데 1명이 다른 브로커 A씨에게도 대리시험을 부탁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김씨는 2009∼2010년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동료인 A씨에게 토익 대리시험 방법을 배워 2011년 1차례 대리시험을 시도하다가 적발돼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A씨도 토익 대리시험 전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사진 합성 등으로 신분증을 위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예전 사진과 제출한 사진,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비교·분석하는 '에이스' 프로그램을 확대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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