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사건으로 핵무기에 가렸던 생화학무기 재부각
국제법으로 제재 쉽지않아…정부, 대북압박 외교 박차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김정남 암살에 화학무기용 물질인 VX가 사용됐다는 말레이시아 당국의 발표를 계기로 북한 생화학무기 위협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김정남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 독살에 신경성 독가스인 'VX'가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23일 밝혔다.
VX의 반입 및 제조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남 암살을 북한 정권의 조직적 소행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난 상황에서 VX의 제조 및 반입은 북한 당국의 개입없이 어렵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북한은 2천 500t 이상의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국제사회는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화학무기금지협정(CWC) 당사국이 아닌데다 방북을 통한 검증 수단이 없기에 북한의 생화학무기 규모와 제조 역량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김정남 사건에서 북한의 VX 사용이 확인된 단계는 아니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 생화학무기 제조 능력의 일단이 드러난 것으로 보고 경각심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25일 "핵무기에 가려 잠시 묻혀있던 북한 생화학 무기의 실전 사용 가능성과 능력을 일깨워준 사례"라고 말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외교 전문가는 "북한의 핵은 자신들의 멸망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사용하기 힘든 '최후의 카드'이지만, 화학무기는 무엇보다 값싸게 개발할 수 있는데다, 누가 사용했는지도 밝히기 쉽지 않고, 은밀히 침투·확산시킬 수도 있어 일반 시민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며 "사실 핵보다도 사용 확률이 더 큰 위협적인 무기"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여기에 더해 북한이 현재 개발중인 탄도 미사일에 생화학무기를 탑재할 기술이 있다면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핵보다도 더 현실적인 재앙으로 볼 수도 있다"며 "한·미로서는 분석하고 대비책을 마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북 제재·압박을 선두에서 이끌어온 한국 정부는 압박의 고삐를 더 조인다는 방침이다. 북핵 뿐 아니라 또 하나의 위협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북한 생화학무기 문제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의 공조 하에 강력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24일 "정부는 때와 장소를 막론하고 화학무기의 사용은 금지된다는 유엔 등 국제사회의 입장을 상기하며, 금번 행위가 화학무기금지협약 및 관련 국제규범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히 공동대응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북한이 화학무기금지협약 비당사국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생화학무기 생산을 금지하는 국제법적 수단은 마땅치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런 만큼 정부는 양자 외교를 통해, 이번 사건이 발생한 동남아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압박의 고삐를 당기도록 만드는 동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등 다자 외교의 장을 통한 문제 제기에 주력할 전망이다.
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만큼 오는 2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한미일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 등 계기에 미국에 재지정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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