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X 피습 생존자의 증언…"가슴과 폐가 타들어 가는 느낌"

입력 2017-02-26 18:22  

VX 피습 생존자의 증언…"가슴과 폐가 타들어 가는 느낌"

1995년 옴진리교 신도가 반대파에 뿌려…처음에는 아무 증상 없어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과 폐가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 온몸에 땀이 솟고 피부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20여 년 전 일본 종교단체 옴진리교 신도로부터 신경성 독성물질 VX 공격을 받았다가 혼수상태 끝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나가오카 히로유키(78)가 설명한 VX 중독 증상이다.

지난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이 VX 공격을 받았다는 당국의 발표가 나온 가운데 나가오카는 24일(현지시간) NHK 방송,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1995년 경험했던 VX 노출 증상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도쿄(東京) 인도를 걷던 중 옴진리교 신도가 뒤에서 뿌린 VX에 노출됐다.

하지만 나가오카는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다"며 피습 이후에도 새해 인사 편지를 부치고 집까지 걸어갔다고 전했다.

30분 정도 지나 집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이상할 정도로 캄캄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 첫 증상이었다. VX가 신경계를 교란하면서 동공이 수축하자 주변이 어두워져 보인 것이다.

곧이어 가슴과 폐가 타는 듯이 뜨거워졌고 그 기분이 전신으로 번지면서 온몸에서 땀이 솟았다.

나가오카는 방바닥에 쓰러져 불에 타는 듯한 피부를 긁어댔고 고통 속에 몸을 비틀고 구르다가 곧 정신을 잃었다.

그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무려 2주 뒤였다.

그나마 옴진리교 신자가 뿌린 VX가 대부분 피부가 아닌 외투 옷깃 아래쪽에 묻었고, 그가 이송된 병원에 사린가스 공격을 받은 피해자를 치료해 본 의료진이 있어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덕이다.

김정남도 피습을 받은 후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기절할 것 같은 상태에서 도움을 청해 공항 내 치료소로 옮겨졌고, 발작증세도 보였다. 상태가 위중해 들것에 실려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에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공격을 받은 직후에는 걸어서 공항내 치료소까지 이동했다.

피습 당시 나가오카는 옴진리교에 빠졌던 아들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과 단체를 만들어 이끌고 있었다. 옴진리교 신도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직장을 그만뒀고 VX 공격까지 받은 것이다.

그는 목숨은 건졌지만, 시력이 나빠졌고 오른팔이 마비되는 느낌을 계속 느끼고 있다고 한다.

he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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