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1919년 기미년 4월 15일 이른 오후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
'두렁 바위'로 불리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 농촌 마을이었던 제암리에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이끄는 일본 군·경이 들이닥쳤다.
4월 5일 화성주민들의 발안 장날 만세운동을 강경 진압한 것을 사과하겠다면서 주민 가운데 15세 이상 남자들을 모두 제암리 교회에 모이게 했다. 대부분 기독교와 천도교 주민들이었다.
이들이 교회에 모이자 일본 군경들은 교회를 포위하고 창문으로 주민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주민들이 죽거나 부상으로 신음하자 일본군은 만행을 감추려고 교회에 불을 질렀다.
몇 명이 탈출을 시도했으나 사살됐고, 교회 밖으로 도망치다 사살된 시신 6구도 발견됐다.
남편 생사를 알려고 달려온 마흔 넘은 여인은 사살되고, 19세 여인은 칼에 찔려 죽었다. 군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이렇게 교회에서 죽은 사람 23명을 포함해 제암리와 고주리에서 무고한 양민 29명이 학살당했다.
참혹한 제암리 학살사건의 참상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만행을 주도한 아리타 중위의 학살행위에 대해 임무수행을 한 것이라며 무죄 판결했다.
당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 제암리 교회에서 학살당한 23인의 순국열사 중 안종락(당시 54세·왼쪽) 선생의 생전 사진이 공개됐다.
제암리 23인과 인근 고주리 6인 등 1919년 화성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으로 숨진 순국열사 중 얼굴 사진이 공식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화성시 제암리 3·1 운동 순국기념관'은 제암리 순국열사 자료를 조사하던 중 안 선생의 고손(4대) 안효남 씨가 선생의 사진을 소장한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입수해 일반에 공개했다고 27일 밝혔다.
1910년대로 추정된 사진 속 안 선생은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걸친 차림으로 아버지(안상옥)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안 선생의 고손자의 어머니가 시어머니로부터 전해 받아 가보로 보관해온 것이라고 기념관 측은 설명했다.
사진은 학살 만행을 한 일본군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 지른 안 선생의 집 잿더미 속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제암리 순국기념관 이혜영 선임연구원은 "제암리 순국열사 23인 중 소장자와 출처 등의 입수경로가 확인돼 얼굴 사진이 공개된 것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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