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배후 정찰총국의 北통신기기업체 사례 부각
거센 반북감정 속 유사한 제재회피 비밀영업 제동걸릴지 관심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김정남 피살사건 때문에 그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교묘히 회피해온 북한의 운신이 더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타국 국제공항에서 버젓이 암살을 자행한 데다가 대량살상무기로 분류된 독가스 VX를 사용한 혐의 때문에 우호적 국가들이 등을 돌릴 가능성 때문이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는 장관들이 이번 사건의 배후가 유력한 북한을 비난하면서 단교까지 제안하고 있다.
27일 AFP통신, 현지언론 등에 따르면 이번 사건이 발생한 말레이는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회피해 외화벌이를 가장 왕성하게 해 온 곳이다.
말레이와 북한은 양국 국민이 상호 비자면제협정에 따라 서로 자유롭게 오갈 정도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관계를 토대로 말레이에는 북한의 여러 산업체가 진출해 국적과 상호를 위장하고 무기 따위를 암거래해왔다.
김정은 암살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북한의 정보기관인 정찰총국(RGB)이 말레이에서 운영하던 '글로콤'이 그 대표적 사례로 지적된다.
대북제재를 감사하는 유엔의 전문가 패널이 지난 24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실상이 잘 조사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7월 북한의 군사용 통신장비가 중국에서 아프리카 에리트레아로 운송되던 중 포착됐다.
이 장비들은 말레이에 있는 업체 글로콤이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콤은 북한 정찰총국이 운영하는 '팬 시스템스'라는 업체의 위장회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북한이 제3국에 설립한 회사가 국제 무기박람회에 참가하거나 고성능 무기류를 외국에 공급해 국제 인지도를 높이는 사례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실제로 글로콤은 말레이에 개통된 홈페이지를 통해 군사, 준군사 조직을 위한 30여개의 통신 체계를 판다고 광고해왔다.
이 같은 거래는 2009년 북한의 군사 장비와 모든 관련 물품의 거래를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 1874에 어긋나는 것이다.
보고서는 "글로콤의 사례를 보면 북한의 제재회피 수법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의 이 같은 암약은 최소한 말레이에서 막을 내릴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김정남 암살과 대량살상무기 사용 혐의를 계기로 북한과의 단교까지 검토하는 말레이가 비밀 영업을 더 묵인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사건에 인도네시아, 베트남 여성들이 동원된 혐의도 있어 현재 반북감정은 말레이를 넘어 동남아시아 전체로 확산하는 기미가 있다.
앞서 지난 21일 태국의 방콕포스트는 사설을 통해 "북한 공작원이 다시 동남아에 분노를 유발했다"며 "김정남 살해는 단순 외교사안을 초월했다"고 주장했다.
북한과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동남아는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무대이기도 했다.
그만큼 제재 회피의 장소로 이들 국가가 활용되고 있을 개연성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동남아는 핵무기 개발에 따른 국제제재로 고립무원에 놓인 북한에 '숨구멍' 같은 지역이라고 보도했다.
말레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등은 북한에 적대적인 서방과 달리 김일성 주석 때부터 이어온 친분을 중시하는 국가였다.
그에 따라 많은 경제 교류가 이어졌다.
북한의 예술가 단체인 만수대창작사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 옆에 '앙코르 파노라마' 박물관을 지어 북한 미술품을 판매해왔다.
북한 정부는 옥류관과 같은 북한 음식점을 체인점 형태로 동남아 국가들에서 운영하고 미얀마 군부에는 재래식 무기도 팔았다.
그 가운데 말레이는 글로콤과 같은 업체가 활약할 정도로 동남아 중에서 북한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국가로 주목됐다.
북한은 말레이에 철광석, 아연 등을 팔고 고무, 팜유 등을 사들이는 왕성한 교역을 해왔고 건설, 광산업에 노동자를 파견하고 있기도 하다.
대북제재를 점검한 유엔 전문가 패널은 보고서에서 "북한의 회피 기법뿐만 아니라 유엔 회원국들의 비협조 때문에 제재 결의의 효과가 현저히 줄었다"고 지적했다.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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