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 공식화…'김정남 VX암살'이 결정타

입력 2017-02-28 10:25   수정 2017-02-28 12:07

美 北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 공식화…'김정남 VX암살'이 결정타

北 2008년 11월 테러지원국서 해제된 뒤 9년 만에 재지정 가능성

美, 생화학테러 가능성 우려에 강경대응…전방위 대북압박 예고

트럼프 정부 대북정책 대화보다 압박에 초점…美의회 전방위 압박



(워싱턴=연합뉴스) 심인성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새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 본격으로 착수한 것으로 공식 확인됨에 따라 향후 미 정부의 대북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이제 막 검토에 들어간 터라 현재로서는 테러지원국 재지정 여부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만에 하나 지정할 경우 이는 단순히 북미 관계의 악화를 넘어,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북한의 국제적 고립 심화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북핵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김홍균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가나스기 겐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일 3국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과 별개로 '김정남 VX 암살' 사건도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측이 오늘 협의회에서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에 착수했다'는 점을 밝혔다"고 전했다.

미 정부가 이처럼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검토에 착수한 것은 북한이 김정남 암살에 대량파괴무기(WMD)인 신경성 독가스 'VX'를 사용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지난 12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도발을 감행했을 때만 해도 다소 절제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닌 데다가, 북한의 '떠보기식' 시험 도발에 과잉반응했다가 자칫 이후의 스텝이 꼬일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김정남 암살에 화학 무기용 물질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강한 VX가 동원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조기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을 경우 자칫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더불어 화학무기 위협이 더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미국이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한 후 정례적으로 재지정 문제를 검토는 해왔지만, 이번에는 김정남 피살 때문에 그 측면에서 검토가 시작된 것으로 안다"는 우리 정부 관계자의 언급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실제 미 조야에서는 생화학테러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급격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일례로 CNN 방송은 최근 "VX를 사용한 이번 고위 목표물 제거가 일부 사람들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겼을 수 있다. '이슬람국가'(IS)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은 부러움에 침을 흘리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프 데이비스 미 국방부 대변인도 지난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김정남 피살 사건 관련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삼가면서도 "(VX가 살인 무기로 사용된 것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실질적인 위협이다. VX는 특별히 제조하기 어렵지 않다. 이러한 맹독성 신경작용제는 미사일 탄두와 다른 무기에 장착돼 WMD로 만들어진다"며 VX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미 국무부가 다음 달 1∼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북미 트랙1.5'(반관반민) 대화에 참여할 북한 외교관들의 비자 발급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 막판에 거부함으로써 만남 자체를 무산시킨 것 역시 이런 우려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주요 언론들도 북미 트랙1.5 대화의 무산 원인이 북한의 VX 사용 혐의에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가 실제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는 사실상 이제 막 출범한 트럼프 정부가 대북정책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도 전에 북미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데다가, 재지정 요건과 절차도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려면 테러를 직접 자행했거나 지원한 행위, 테러에 사용됐거나 사용될 물자를 제삼자에 제공한 행위, 테러 행위자에 대한 은신처 제공 등의 구체적 혐의가 입증돼야 한다.

직전 버락 오바마 정부가 미 의회의 지속적 압박에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다중이 이용하는 국제공항 한복판에서 치명적 독가스인 VX를 사용해 김정남을 암살한 만큼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정남 암살 사건이 테러지원국 재지정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정부 당국자의 최근 발언과 "VX 신경작용제를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는 것은 본질에서 테러 행위"라고 규정한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의 WSJ 인터뷰 언급 등도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가능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미 의회와 한국, 일본 등 동맹들의 전방위 압박 역시 테러지원국 재지정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들이다.

공화당 소속 테드 포(텍사스) 하원의원이 이미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법안(H.R 479)을 공식 발의해 놓은 가운데 코리 가드너(콜로라도) 상원 외교위 아태소위원장을 비롯한 연방의원들은 연일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위해 신속한 행동에 나서라며 미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이날 스위스 제네바 유엔사무국에서 열린 제34차 유엔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을 통해 VX 신경제로 김정남을 암살한 북한 정권의 잔혹성을 거론, "이는 북한이 가입한 국제 인권규범 위반일 뿐 아니라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력 대응을 촉구했다.

북한은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으로 이듬해 1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됐으나,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북한과의 핵 검증 합의에 따라 2008년 11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뒤 지금까지 매년 갱신되는 명단에 한 번도 다시 오르지 않았다. 이번에 지정될 경우 9년 만에 재지정되게 된다.


현재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는 국가는 이란과 수단, 시리아 등 3개국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논의가 탄력을 받으면서 북미대화 가능성은 더욱 요원해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3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만남 관련 질문에 "우리는 그가 한 일(도발)에 매우 화가 나 있다"고 비판하면서 "너무 늦었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힌 데 이어 대부분 한반도 전문가들 역시 현시점에서의 북미대화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더욱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더불어 허버트 R.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등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모두 강경성향이어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 태도변화가 없는 한 북한에 대해 초강경 압박·제재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미 정부와 의회 일각에서는 그동안 금기시했던 대북 선제타격, 정권교체 등의 언급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si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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