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읍 장터 만세시위 3월 15일에 맞춰 소안항일운동기념탑 광장서
완도 만세운동 주도 형제 항일운동가 송내호 송기호 묘역 순례도
(완도=연합뉴스) 박성우 기자 = 3·1절을 맞아 항일운동의 성지 완도 소안도에서 주민들이 만세운동을 재현한다.
소안도 주민들은 오는 15일 소안도 가학리 소안항일운동기념관 광장에서 3·1절 만세시위를 재현하는 행사를 벌인다.
올해로 11회째 이어지는 연례행사다.
3·1 만세운동이 보름 늦게 재현되는 것은 당시 송내호 선생 등 소안 출신 항일운동가들의 주도로 완도읍 장터에서 장날에 맞춰 열린 만세시위가 15일이기 때문이다.
3·1 만세운동이 천안 아우내 장터를 시작으로 전 국토로 번지는 과정에서 완도 지역은 섬인 관계로 늦게 일어났다.
만세 재현은 1천여 명이 모여 만세를 부른 뒤 농악단을 앞세워 2.5㎞ 거리의 독립유공자 송내호 송기호 형제 묘역까지 도보순례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이대욱(65)회장은 1일 "당시 3·15 만세시위를 주도한 송내호 선생을 비롯해 정남국, 최형천 선생 등이 모두 소안출신"이라며 "당시 소안도는 국내에서 가장 격렬한 항일운동 본거지 중 한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소안도는 2012년부터 전체 1천여 가구가 365일 태극기를 게양하는 등 항일운동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69명의 독립운동가와 20명의 독립유공자 등 89명을 배출, 항일운동의 성지로 불린다.
외딴섬 소안도의 항일운동의 뿌리는 1894년 갑오년 동학혁명에서 시작된다.
동학군이 소안도에 들어와 군사훈련을 하는 과정에 소안도 출신 이준화, 이순보, 이강락 등이 합류한다.
이준화 선생이 1909년 1월 동료 5명과 함께 일제가 일본 상선들을 위해 소안도 인근 당사도에 세운 등대를 습격, 일본인 4명을 처단하고 시설물을 파괴하면서 항일운동이 본격화됐다.
1924년 소안도 주민들이 일제 경찰과 친일지주에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13명을 구금한 사건은 항일정신을 더 고조시켰다.
송내호 송기호 형제가 1928년 결성한 소안배달청년회 활동 등 항일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김경천 선생 등이 1913년 세운 '중화학원'은 항일해방운동가 배출의 요람이 됐다.
이후 '소안학교'로 그 전통을 이어갔으나 일제는 일본에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1927년 강제 폐교했다.
이대욱 회장은 "당시 소안도 섬 주민 6천명 중 800명 이상이 일제의 감시를 받을 정도였다"며 "1990년 항일운동기념탑에 이어 2003년 항일운동기념관 건립 등을 통해 소안 항일정신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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