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독립만세 주도 엄준·최원득·송명진 선생…훈포장 전달 못해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셨는데, 후손을 찾지 못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일제강점기 서울보다 한 달가량 늦게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된 울산에서도 많은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르고, 죽임을 당했다.
만세운동 소식이 늦게 전파돼 1919년 4월 2일 울주군 언양장터(언양 4·2만세운동)를 시작으로 병영 4·4만세운동, 남창 4·8만세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1일 국가보훈처 울산보훈지청에 따르면 울산의 독립만세운동으로 모두 45명이 '독립운동가' 인정을 받았다.
이들 중 42명은 후손을 찾았지만, 나머지 3명은 아직 후손이 나타나지 않아 훈포장이 그대로 보훈처에 보관돼 있다.
주인공은 엄준(1885∼1919)·최원득(1900∼1930)·송명진(미상) 선생이다.
엄준 선생은 병영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로 비밀청년회 활동을 했다.
자신의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고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제작했다.
만세운동으로 동지들이 체포되자 선두에서 석방을 요구하다가 일제의 총탄에 순국했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최원득 선생 역시 병영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돼 태형을 받았다.
울산보훈지청과 병영삼일사봉제회는 1987년 중구 동동 삼일사당에 병영만세운동 독립운동가의 위패를 모신 이후 두 선생의 후손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아직 가족이 나타나지 않았다.
엄준 선생은 부모와 처자가 없다는 기록이 있어 후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최 선생은 부인과 1남 1녀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송 선생은 울산 또는 부산의 3·1 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록만 있어 정보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다.
울산보훈지청 관계자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먼 친척이라도 나타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문주수 병영삼일사봉제회 회장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어르신들의 넋이라도 후세의 위로를 받아야 할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병영삼일사봉제회는 매년 4월 5일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can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