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 불명자 46만명 방치…"인식 전환·현장 점검 필요"
"기관 간 협력시스템 만들고, 나이별 등 별도 관리 방안 둬야"
(수원=연합뉴스) 김인유 류수현 기자 =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제2차대전, 6·25 전쟁 등 세계 각국 전쟁터에서 실종된 미국인 유해를 찾는 미국의 '전쟁포로·행방불명자 합동조사본부'(JPAC)의 표어다.
미군 JPAC는 전사한 자국 군인의 유해를 마지막 한 구까지 찾기 위해 예산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기관으로 유명하다.
한 JPAC 관계자가 수년 전 우리나라 유해발굴 현장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더라도) 국가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을 국민이 알아주는 것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죽은 국민의 시신까지 찾아내려 최선을 다하는 미국의 노력은 거주 불명 국민 46만명을 보유한 우리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당부이기도 하다.
◇ "신고에만 의존은 그만…찾아 나서는 행정 펼쳐야"
거주 불명 인구가 46만 명을 넘어 국민 100명당 거의 1명꼴에 이른 가장 큰 이유는 신고에 의존하는 행정이다.
주민의 거주 실태를 파악하는 주민등록 사실 조사는 분기마다 이뤄진다.
읍면동 단위로 통장 등이 나서 주민등록에 기재된 내용과 실제 주민의 거주 사실을 대조한다.
그러나 주민센터 직원은 거주 불명자들의 소재를 파악하려 해도 전입 담당 직원이 대부분 단 한 명에 불과해 업무부담이 크고 현실적으로 힘든 방법이라고 호소한다.
경기도의 한 주민센터 관계자는 "사실 조사를 나갈 때 통장에게 업무를 분담하고 거주지가 확인이 안 되는 곳이 있으면 직원이 직접 나가기도 한다"면서 "거주 불명자들의 소재를 일일이 파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장 인력이 달리는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도심과 농촌 지역 거주 불명자 수가 많이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주민센터 인력은 대부분 비슷하다"면서 "일률적인 인력 배분을 수요에 따라 배치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주민등록 인구에 포함된 거주 불명자도 엄연한 우리나라 국민이다.
신고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행정자료라서 현실과 어느 정도 괴리가 있다 해도 "신고가 없으면 소재를 파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행정 당국의 입장은 그동안 거주 불명자들의 소재파악에 사실상 손을 놓다시피 한 정부의 태도를 대변한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소재파악이 제대로 안 되고 심지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각지대 놓인 국민을 단 한 명이라도 찾아내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태도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유성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는 "그동안 현행 주민등록 통계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매번 행정 당국의 답변은 '현장을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면서 "46만명이라는 숫자를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 방치된 국민이 혹시 없는지 살펴보겠다는 정부의 적극적인 인식과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는 행정자료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분야도 아니었다"면서 "통계청이 2015년부터 실시한 등록센서스에 주민등록 인구통계가 과거보다 주요하게 활용되는 만큼 거주 불명자 관리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과 관심도 이제라도 미뤄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인터넷에 입력하면 모든 정보가 한눈에…美 'NamUs'
지난 1987년 미국 미주리주 캔자시스티에서 1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 21살 여성 폴라 베버리 데이비스(Paula Beverly Davis)가 실종됐다.
그녀의 시신은 그해 말 오하이오주 잉글우드에서 경찰에 의해 발견됐지만, 신원을 확인할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제인 도우(Jane Doe·신원미상의 여성 변사체를 부르는 말)'로 이름 붙여진 채 그녀는 지역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2009년 10월 데이비스의 여동생 스테파니가 ABC방송의 실종자 프로그램인 '포가튼'(Fogotton)을 시청하다 'NamUs'라는 실종자 추적 시스템을 알게 됐다.
스테파니는 즉시 NamUs에 접속해 언니의 기록을 찾아냈다. 잉글우드에서 발견된 21살 제인 도우의 기록 가운데 문신이 언니와 똑같았다.
결국, 데이비스의 유해는 실종 22년 만에 고향인 캔자스시티로 옮겨져 어머니와 할머니 무덤 옆에 안치됐다. 모든 것이 NamUs의 덕분이었다.
신원을 확인할 아무런 정보도 없던 데이비스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해준 NamUs는 실종자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야 할 선도적 역할의 모델을 제시했다.
NamUs는 'National Missing and Unidentified Persons System'이라는 말뜻 그대로 실종자와 신원미상자를 확인해 실종사건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실종자와 신원미상자의 신원을 밝혀 가족들에게 돌려보내는 일은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중요한 숙제였다.
미국 정부가 법무부 산하 NIJ(국립사법연구소) 주도로 만들어낸 'NamUs'는 우리에게도 배울 점이 있는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05년 봄 미 연방·지방 정부 공무원과 검시관, 부검의, 법의학자, 정책입안자, 실종자 단체, 가족 등이 필라델피아에서 NIJ 주관으로 모였다.
'실종자 찾기 정상회담(Identifyng the Missing Summit)'으로 불린 이 회의는 실종자와 신원미상 시신을 조사해 신원을 밝혀내기 위한 총체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이 회담의 결과로 국립실종자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고, 이 TF는 실종자와 미확인 시신 문제 해결을 돕는 사람들이 관련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여러 기관의 데이터를 네트워크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NamUs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NamUs는 2007년 7월 준비작업에 들어가 2008년 9월 실종 자료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끝낸 뒤 2009년부터 지금의 시스템 운영을 시작했다.
NamUs의 신고 및 검색 시스템이 개발되면서 실종자와 미확인 변사자에 대한 데이터에 접근하는 수준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엄청난 향상을 가져왔다.
우리나라 경찰청은 지난 2008년 '실종 아동 등 프로파일링 시스템'을 도입해 실종자 사건 해결에 활용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실종 아동 등과 가출인 등 실종 관련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실종신고 접수 시 축적된 자료와의 비교 검색을 통해 실종자를 추적해 발견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실종 아동 등' 범위는 실종 당시 만 18세 미만 아동,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치매 환자로 규정된다.
실종신고 자료뿐 아니라 신원미상 변사자, 교통사고 사상자 등 경찰이 관리하는 실종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비롯해 보건복지부, 서울시, 국민연금공단 등 유관기관의 정보망과도 연계됐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무연고자 정보 19만4천300건과 치매 인식표 대상자 정보 7만1천건, 실종 아동전문기관에서 무연고자 정보 1만8천건이 실시간으로 연계되고 있다. 경찰청은 사진과 지문을 등록할 수 있는 '안전Dream 앱'에 6개 정부 부처와 민간단체의 실종 관련 정보 30만여 건을 연계한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았다.
실종자 등과 달리 거주 불명자 상당수는 채무나 잦은 이사 등으로 인한 자발적인 경우로 추정된다. 이런 이유 등으로 거주 불명자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한 별도 데이터 구축이나 기관별 정보 교류는 미미한 실정이다.
하지만 거주 불명자 가운데 생사가 불투명하고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됐을 가능성이 있어서 이들을 포착할 사회 안전망은 작동돼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 보건당국과 경찰청 등에 국민 관련 자료가 잘 구축된 만큼 이를 활용하고 필요에 따라 기관끼리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유성 교수는 "한 국민이 수년째, 수십년 째 거주 불명 상태로 있다면 안전이 걱정되는 사례다. 경찰청 등에 의뢰해 실종자 데이터와대조해보는 등 행정 당국은 관련 기관에 정보를 요구해 소재를 파악해야 한다"라며 "거주 불명 상태로 있는 국민이 휴대전화를 개통했다거나 병원에 갔다면, 이들 통신사와 건강건강보험공단 측에 주민등록번호만 확인해도 당사자가 주로 어디에서 통화하고 어느 병원을 다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보 유출 우려는 주민등록번호에 무작위 아이디를 부여한 뒤 다른 기관이 정보에 접근할 때 주민등록번호 대신 해당 아이디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적용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라면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만큼 기관 및 단체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 필요하다면 '행정 명령'도 내릴 수 있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정부 기관 상당수는 부서간은 물론 외부 기관과 정보 교류를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정당한 이유 없이 정보 공개를 거부하면 정보 제공 의무자에 대한 민형사상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직결된 정보를 주고받는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 수단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관련 법망 정비하고 고령자는 관리 기준 따로 둬야"
교육부는 '7살 원영이 사건' 등을 계기로 최근 경찰청과 지자체 등이 협력해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참석하지 않고 연락이 닿지 않은 아동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집중 점검 기간을 뒀다.
원영이는 지난해 1월 신입생 예비소집에 불참한 지 한 달 뒤인 2월 친아버지와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숨진 학대 피해 아동이다.
전국 각시도교육청은 일선 학교와 읍면동 주민센터 등에 협조를 구해 아동들의 행방을 찾았다.
점검 기간이 끝나고 소재가 불분명한 아동들에 대해선 경찰이 재차 조사에 나서 아동 학대 등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거주 불명자 중에도 아동 학대 피해자처럼 행방을 찾기 위한 절실한 노력이 필요한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2013년 4월 감사원이 보건복지부에 통보한 '고령사회 대비 노인복지시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보면 거주 불명 등록제 시행 후인 2010년 1월부터 2012년 8월까지 거주 불명 등의 사유로 사회보장급여가 중지된 사람이 2천29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8월 말 기준으로 거주 불명자 49만3천224명 중 3만3천738명이 건강보험에 가입된 것을 확인했으나 이 중 1.4%(473명)만이 기초연금(당시 기초노령연금) 등 사회보장급여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거주 불명자라도 의료보험이나 연금, 기초생활비 대상자가 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우선 본인의 '신고'가 있어야 한다"라면서 "거주 불명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홍보하기 위해 거리에 현수막을 걸어 안내하거나 무료 급식소 등을 찾고 있지만, 신분 노출을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김기환 고려대 세종캠퍼스 응용통계학과 교수는 "거주 불명자들이 누군지 파악하려면 그들이 있을 만한 장소 곳곳에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라면서 "자발적인 거주 불명을 택한 사례도 있을 수 있어서 신분 확인 과정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이들을 반드시 법적으로 관리한다는 개념보다 신상을 파악하는 정도로 접근해도 충분하다"라고 강조했다.
'원영이 사건'이후 경찰과 교육 당국은 미취학·무단결석 관리·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개학 전부터 아이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주거 불명자 확인에도 이런 매뉴얼을 검토하고 관련 법망을 정비할 필요성이 나온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소재파악이 필요한 거주 불명자의 경우 지자체가 '직권'으로 경찰에 요청 또는 신고할 수 있도록하는 내용의 법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아동이 실종되거나 학대가 의심되면 발견자는 '의무'로 신고해야 하는 것처럼 거주불명자의 안전 상태가 불안하거나 사각지대 방치 등이 의심되면 지자체도 경찰이나 여러 정부 부처 등에 원만한 협조를 구할 수 있도록 관련 매뉴얼 개발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정부가 거주 불명자들의 실태를 본격적으로 파악하겠다면 이들이 있을 만한 장소, 예를 들어 노숙인 쉼터나 주거 취약층 밀집장소 등을 찾아가는 전문 인력을 구성하고 해당 장소에 대한 집중 점검 기간을 두는 등 각종 조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민등록 통계상 100세 이상 1만7천여명 가운데 거주 불명자는 74%에 달한다.
김기환 교수는 "경제활동이 힘든 고령자인 거주 불명자들은 사망신고가 늦어지고 있는 걸 수도 있는데, 연령마다 기준을 달리해 별도로 관리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관계기관과 지자체, 전문가 자문을 거쳐 주민등록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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