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강의 돈 줘도 못사요" 등급경쟁에 짓밟힌 대학 수업권

입력 2017-03-03 07:03  

"필수강의 돈 줘도 못사요" 등급경쟁에 짓밟힌 대학 수업권

구조개혁 평가 대비해 수강 인원 무차별 축소…전공 과목도 '싹둑'

"수백만원 등록금 내고도 수강 못해 졸업 차질"…대학 경쟁 과열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수요일 '00영어' 강의 구합니다. 졸업하게 제발 도와주세요ㅠㅠ", "졸업하려면 '철학00' 꼭 필요합니다. 사례해 드립니다"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대학 구조개혁 2주기 평가를 앞두고 대학가에서 학기 초마다 강의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

각 대학이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수강 인원을 일방적으로 축소하자 돈까지 오가는 '강의 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뤄진다.

이른바 '꿀강의'라 불리는 인기 강의 수강 경쟁은 전부터 있었지만, 대학 평가를 인식한 무리한 강의 조정은 전공과목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졸업 여부가 걸린 생존 싸움이 펼쳐진다.

충북 지역 A대학의 모바일 게시판에는 이번 학기 수강신청 기간에 강의를 구하거나 학교 쪽을 비난하는 글로 도배됐다.

한 학생은 "00강의 버리시는 분. 이번에 졸업해야 해요. 사례합니다"라고 올렸고, 다른 학생은 "(학교 쪽이) 졸업엔 문제 없게 해준다면서요? 이러다 제때 졸업 못 할 거 같은데 책임지실 건가"라고 따졌다.

어떤 학생은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 지난 학기도 심했다. 9학점밖에 못 들을 뻔해서 결국 이상한 교양으로 채워야 했다"고 전했다.

이 학교 박모(26·3년) 씨는 "예전에도 교양과목 요일과 시간을 조정하기 위해 강의를 맞바꾸는 일은 있었지만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며 "교양과 전공 가리지 않고 수강 인원을 일방적으로 줄여 대혼란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내고 원하는 강의도 못 듣고 졸업까지 차질이 생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이 대학은 상당수 강의의 수강 규모를 대폭 줄여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교양 수업은 물론 30∼50명 규모의 전공수업도 갑자기 20명으로 제한했다.

교수 재량으로 필요한 경우 수강 인원을 일정 규모 늘리는 추가 신청 제도도 없앴다.

학생 반발이 커지고 수업권 침해 논란이 벌어지자 학교 쪽은 3차례에 걸친 수강제한 해제 조치를 통해 일부 강의의 수강 인원을 다시 늘려줬다.

학교 관계자는 "소규모 강좌 비율을 높이기 위해 수강 인원을 줄이기로 했다가 수업권 침해라는 지적에 따라 수강제한 조치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B대학도 지난해 강의 규모와 수를 줄여 큰 홍역을 치렀다.

총학생회를 비롯한 이 대학 학생들은 "실수요 조사를 통해 부족한 전공수업을 추가 개설하라"고 요구하며 서명 운동을 벌이고 대형 현수막을 내거는 등 크게 반발했다.

대학들이 학생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수강 인원을 제한하는 것은 구조개혁 평가 항목 중 '강의 규모의 적절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다.

강의 규모 평가는 4단계로 이뤄진다.

수강 인원 20명 이하가 가장 높은 점수(40%)를 받고, 20∼50명(30%), 51∼100명(20%), 101∼200명(10%) 순으로 점수가 매겨진다. 201명 이상 강의는 아예 평가 대상에서 제외된다.

20명 이하 강의가 많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추가 재정이 필요한 교수 충원 없이 소규모 강의 비율을 늘리려다 보니 강의 수요나 학생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강의 조정이 난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은 특정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현상이며, 특히 1차 평가에서 좋지 않은 등급을 받은 학교는 사정이 더욱 절박할 수밖에 없다.

한 대학 관계자는 "각 대학이 구조개혁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경쟁하면서 과열 양상을 띤다"며 "강의 규모 적절성처럼 손쉽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지표에 매달리다 보니 학생들의 수업권마저 제한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고 꼬집었다.

k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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