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삼성그룹이 그룹 사령탑 격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기로 하면서 앞으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다.
1일 재계와 증권가에 따르면 당장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는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가(家) 총수로는 처음으로 구속기소되면서 무죄 입증이 최대의 당면 현안이 됐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는 "지금은 경영권 승계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일단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지배구조 개편과 경영권 승계는 일정 기간 유예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이 부회장의 구속 사유 중 하나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028260]-제일모직 간 합병을 추진했고, 그 와중에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계기로 반(反)삼성 기류가 표면화된 점도 부담이다.
삼성전자 등 계열사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건인 셈이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주주 제안으로 공론화된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 문제도 당분간은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작년 11월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 등 주주가치 최적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검토에 최소 6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24일 주주총회를 개최하는데 안건으로 지주회사 전환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아직 6개월이 채 안 돼 검토에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주총에서는 '현재 최적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검토 중이며 앞으로 공유할 내용이 있으면 공유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이 표명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외려 미전실 해체나 이 부회장의 구속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을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미전실 해체로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없어진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미전실의 기능 중 일부가 지주회사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이나 M&A(인수·합병) 등 전략적 의사결정은 물론 전자·전기 분야 계열사들이 삼성전자 지주회사 아래로 모이면서 계열사 간 업무조정 역할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미래 신사업 발굴, 비주력 사업 부문의 매각 같은 결정도 합법적인 틀 안에서 할 수 있다.
작년 9월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삼성SDI[006400]의 지분 19.6%, 삼성전기[009150] 지분 23.7%, 삼성SDS 지분 22.6%,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84.8% 등을 쥐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자회사의 지분 20%(상장회사의 경우)를 확보해야 하는데 일부는 이미 이런 요건을 충족한 상태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전실 해체와 무관하게 삼성전자 이사회라는 합법적인 틀과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미전실을 통해 탈법적으로 진행됐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이 문제가 해소됐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앞으로는 허용된 제도와 절차의 울타리 안에서 공개적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상헌 연구원은 또 "삼성이 당초 약속한 대로 올해 5월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내부검토 결론을 내놓고 지주회사 전환에 착수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외려 이 부회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이런 작업이 진행되면 그 절차나 취지의 순수성이 훼손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을 통한 경영권 승계가 예정된 수순을 밟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은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권 승계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그에 앞서 선결돼야 할 과제로 사회적 신뢰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하려면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같은 계열사 간 분할·합병 작업이 앞으로 5∼6번 이상 진행돼야 한다"며 "이는 모두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주총 특별결의 사안"이라고 말했다.
주주들의 신뢰와 동의 없이는 이런 작업들이 진전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의 계열사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버리겠다는 걸 명시적으로 약속하고 이에 대해 주주와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경영권 승계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미전실을 해체한 이상 앞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합법의 틀 안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며 "미전실 해체는 이에 대한 이 부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sisyph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