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아버지는 머슴…"후손들 목소리내야"

입력 2017-03-01 08:00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아버지는 머슴…"후손들 목소리내야"

광복회 의정부시지회장 남주우씨 "서로 모른 척 지내는 현실 안타까워"

(의정부=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독립운동을 하셨던 선조들은 출신, 나이를 막론하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형제처럼 뭉쳤는데, 후손들은 다들 흩어져 살며 서로 모른 척 지내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광복회 의정부시지회 지회장 남주우(62)씨는 1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뭉쳐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주우씨는 일제 강점기때 충남 당진 대호지면에서 4ㆍ4 독립만세 운동에 앞장선 남윤희 애국지사의 손자다.


대호지 만세운동은 1919년 4월4일 대호지면사무소 광장에서 당시 면장이었던 이인정 선생과 주민 800여명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벌이다 일제의 발포로 579명이 참사한 사건이다. 이때 남 지사는 서울에서 3ㆍ1 운동을 마치고 내려온 독립운동가 동지들과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당시 공주 지방법원에서 1년형을 선고받았다.

옥중에서도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연락을 취하며 거사를 도모하던 남 지사는 일제에 발각돼 모진 고문을 받았다. 얇게 쪼갠 대나무로 매질을 당하며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매일 10대씩 매질을 당했지만, 오히려 일주일 치를 한꺼번에 때리라고 호통치셨다"며 "젊은 시절 술집에서 시비를 거는 일본 낭인들을 단숨에 때려눕힐 정도로 기개가 있으셨다"고 주우씨는 말했다.

출옥 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던 남 지사는 1944년 조국 독립을 한해 앞두고 눈을 감았다. 이후 독립운동의 공훈을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하지만 후손들의 삶은 쉽지 않았다. 지역에서 대대로 진사 벼슬을 하던 선비 가문이지만, 독립운동을 한 아버지를 둔 탓에 집안은 풍비박산 나 남 지사의 아들이자 주우씨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머슴살이해야 했다.


아버지 밑에서 어렵게 살며 회사에 들어가 일하던 주우씨가 지역의 독립운동가 자손들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서울에서 의정부로 이사 온 1996년 무렵.

남씨는 "우리 집에서도 할아버지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다가 함께 독립운동한 동지가 알려줘 건국훈장을 받게 됐다"며 "어렵게 사는 독립운동가 자손들이 뭉쳐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지하에 계신 선조들도 바라는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의정부에도 많은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살았지만 이들을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남씨가 만난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난하고 삶에 여유가 없었다.

"독립운동 이력을 쉽게 좌익과 연결하던 시대를 지나온 탓에 선조의 독립운동을 드러내기 꺼리는 이들도 많았다"고 남씨는 회상했다.

이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것은 지치고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득세하는 현실을 보며 남 지사는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 둘 남씨의 뜻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었고 결국 의정부에도 2007년 광복회의 정식 지회가 생기게 됐다.

지금도 광복회 의정부시지회의 중심축으로 활동하는 남씨는 최근 국정화 교과서와 위안부 협상 문제 등을 지켜보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더욱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독립운동가들은 목소리를 죽이고 살아왔기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목소리를 내야 민족의 역사가 바로 설 것입니다."

jhch79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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