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폭동' 25주년 앞두고 체험기록 '캐시어의 비망록' 발간
한국인 뿌리 찾는 여정…"아직도 차별·폭력 악순환 반복"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종우 특파원 =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흑인 폭동은 내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일깨워준 계기였습니다. LA폭동은 그야말로 인종차별과 폭력의 '용광로'(Melting-pot)였습니다."
1.5세 한인 작가 캐롤 K. 박(37) 씨가 LA폭동 25주년을 앞두고 책 '캐시어의 비망록: 한인, 인종주의, 폭동'(Memoir of a Cashier: Korean Americans, Racism and Riots)을 펴냈다.
이 책에는 LA폭동 당시 12세였던 그녀가 어머니가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주말마다 캐시어로 일하며 체험한 흑인소요 사태 전말이 담겨있다.
미국 사회 내 인종차별과 폭력, 억압의 악순환을 재조명하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기록이기도 하다.
그녀는 1일(현지시간) "LA폭동 전까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면서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뿌리가 한국인이다'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박 씨는 이번 책을 내게 된 배경은 LA폭동 상황을 한인의 시각에서 당당하게 얘기하고 이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당시 우리 부모세대들은 소요사태 와중에 제대로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면서 "나는 자라면서 폭동 당시 우리가 듣고 본 것을 당당히 얘기해야 한다는 소명감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박 씨는 "LA폭동의 발발 원인이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또다시 비극은 일어날 수 있다"면서 "안 그래도 최근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과 폭력, 억압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발생한 LA폭동 사태의 직접적 도화선은 백인 경찰의 로드니 킹 구타 사건이다.
하지만 LA폭동 당시 극심한 한-흑 간 갈등은 주류 언론들이 당시 한인마켓에서 한인 주인이 흑인 소녀를 살해한 '두순자 사건'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두순자 사건'은 로드니 킹 구타 사건이 발발한 1991년 비슷한 시점에 캄튼 지역의 한인마켓을 운영하던 두순자 씨가 매장에서 물건을 수차례 훔친 흑인 소녀과 다투다가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미국 언론은 로드니 킹 구타 사건보다 두순자 사건을 집중 조명하면서 한-흑 간 갈등을 유도했다.
박 씨는 "LA폭동으로 53명이 사망하고, 수천여 명이 부상했다. 재산피해액만 최소 10억 달러(약 1조1천300억 원)에 달한다"면서 "한-흑 갈등 속에 한인사회의 피해가 너무 컸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녀는 2014년 미주리 주 퍼거슨과 2015년 볼티모어에서 발생한 흑인 소요사태를 거론하며 "LA폭동이 발생한 지 25년이 됐지만 인종차별, 빈곤, 억압은 사라지지 않았고 사회는 변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 씨는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 사회에서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우리가 다른 인종간 연대하고 서로 공감한다면 폭력을 방지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는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UC 리버사이드)에서 예술창작 석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UC 리버사이드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며 영화제작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재미 언론인 이경원 씨와 작가 딘 스틸맨은 추천사를 통해 "침묵과 희생을 말없이 감수하는 어머니 세대를 옹호하고, 주류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LA폭동에 대해 용감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라고 평가했다.
jo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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