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작가 이인휘(59)가 신작 소설 '건너간다'(창비)를 냈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한 이용석 열사의 삶을 그린 '날개 달린 물고기' 이후 12년 만의 장편이다. 작가는 지난해 소설집 '폐허를 보다'로 10년 넘는 침묵을 깨고 복귀했다. 이번 장편은 소설에서 멀어진 이유에 대한 설명이자 노동문학 작가로서의 회고록 성격이다.
소설은 식품공장에서 호떡 뒤집는 일을 하며 글을 쓰는 박해운이 한동안 잊고 있었던 하태산의 음악을 다시 듣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박해운은 어느 날 종적을 감춘 하태산의 삶을 소설로 옮겨볼까 생각하지만, 곧 자기 얘기를 쓰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작가는 박해운의 회상을 통해 자신이 몸담아온 노동문학의 여정을 되짚는 한편 외국인 노동자들과 어울리는 박해운의 일터를 비추며 오늘날 노동문학의 존재 이유를 자연스레 설명한다. 소설의 얼개만으로도 자전적 경험이 짙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노동자 문예잡지 '신새벽'을 만들 당시 쓴 필명이 박해운이었고, 아내의 병을 고치느라 소설을 접은 시기 빚을 갚기 위해 일한 곳이 강원도의 식품공장이었다.
박해운은 군대에 다녀와 공사판을 전전하다 취업한 타이어 공장에서 노동문학을 만나게 된다. 한국 최초의 노동소설 '파업'을 쓴 안재성은 박해운에게 문학 공부를 제안하는 동료 '안지성'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1986년 분신한 박영진 열사의 추모사업회를 꾸리고 작가 김한수·정화진·윤동수 등과 함께 문학과 노동운동의 접점을 만들려 애쓰던 시기를 회고한다.
현실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문학이 개인 주체의 내면을 파고들기 시작한 지가 벌써 20여 년인데 오늘날 노동문학은 무얼 할 수 있을까. 작가는 박해운의 시선을 통해 노동시장의 최약자들을 착취하고 작업장에 CCTV 수십 대를 설치해 인권침해를 일삼는 악덕 사장을 고발한다. 사장에 맞서 싸우는 데 앞장선 칠순의 여성 노동자 '왕언니'는 박해운의 소설을 읽고 "내가 누구일까? 사는 게 뭘까?" 고민해봤다고 말한다. "우리를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카메라로 감시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도 집에 가면 사랑받는 부모랍니다." 왕언니가 맞춤법도 틀려가며 사장에게 써보인 글에서 박해운은 반 세기 전 전태일 열사를 발견한다.
작가는 소설을 멀리하던 시절, 정태춘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언젠가 그 눈물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쓰겠다는 생각이 이번 소설로 나왔다. 소설은 지난해 11월 정태춘이 광화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태산이 촛불광장에 나와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부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세상이 평화로운 적이 없었던 것처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 역시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 하태산의 노래가 강으로, 장엄한 촛불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324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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