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리고 아웅' 中당국 "법규위반 때 엄중조사"만 강조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특파원 = 롯데가 주한미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하고나서, 중국 정부와 관영매체들이 나서 사드 보복을 조장하는 가운데 중국 국민이 한국산 차량까지 벽돌로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해 반한(反韓)시위가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나 관영매체들은 사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이 문제로 한국 관련 제품 등을 부수고 한국인들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차별하는 행위로 번지면 안 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그동안 프랑스, 일본, 몽골, 노르웨이 등과 외교적 분쟁이 생겼을 때 관영매체들을 동원해 해당 국가를 보복해야 한다고 선동하고, 불매운동을 조장하면서도 '수위조절'을 시도해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장쑤(江蘇)성 치둥현의 롯데백화점 부근에 신원 불명의 건달들이 나타나 '롯데가 중국에 선전포고했으니 중국을 떠나라'를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한 뒤 근처의 한국 자동차를 부쉈다.
이들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라고 칭하며 애국주의를 외쳤다. 그러나 공청단은 웨이보를 통해 이들이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웨이보에 게재된 파손된 차량은 한중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로 보이며 뒷유리창이 깨졌다. 또한, 다른 웨이보에서는 한국 업체 직원이 밖에 세워둔 한국 차량의 타이어가 펑크나고 유리창이 깨진 사진도 올라왔다.
환구시보(環球時報) 등은 이들 차량의 파손 시점이 각각 다르고 롯데백화점과도 거리가 멀다면서 롯데에 대한 보이콧과는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 매체는 '한국은 있으나 마나'한 나라라며 사드보복을 강력히 주장하고 선동해왔던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다.
중국 현지에서는 이번 한국차량 파손 사건이 중국 당국이 사드보복 의지를 강조하고 이에 국민들이 가세해 한국산 불매운동을 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불매운동을 넘어 한국산 제품 파손, 그리고 그 이상의 폭력행사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 센카쿠 영유권 분쟁으로 일중 관계가 악화됐을 당시인 2012년 9월 베이징의 시위대 수천명이 시내 일본 대사관 앞으로 몰려와 돌을 던지는 폭력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현지 공안국은 최근 롯데 보이콧을 빌미로 비이성적인 행동이 일부 일어나고 있다면서 "시민들에게 이성적인 애국을 하고 법규 위반을 하지 말라"고면서 "법규 위반시 엄중히 조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내 사드보복이 과격 시위 양상으로 확산하면서 한국인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1일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웨이신(微信·위챗)에는 '본점 한국인 초대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내붙인 베이징의 식당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식당은 논란이 일자 플래카드를 스스로 뗀 것으로 알려졌다.
산둥성 칭다오 한국총영사관 앞에서는 중국 국기와 '사드 반대, '롯데 불매'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장면이 웨이보를 통해 퍼졌으며, 지난달 26일에는 지린(吉林)성 장난 지역 롯데마트 앞에서 보이콧을 외치는 플래카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베이징 왕징(望京) 지역에서는 일부 교민을 중심으로 외출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며, 교민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밖에 다닐 때 조심하자"는 우려의 글도 올라오고 있다.
중국에서 '초코파이'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오리온은 중국에서 롯데 불매 운동이 벌어지자 사드 보복을 우려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경제망에 따르면 오리온은 지난 28일 성명을 통해 '오리온은 롯데 브랜드가 아니며 전혀 관계가 없다며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일부 중국 소비자들이 오리온 또한 롯데의 다른 브랜드로 오해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소식통은 "중국 내 사드 반대가 폭력 양상을 띠는 것은 정말 우려되는 대목"이라면서 "중국이 외자 기업에 법규를 준수하라고 강조하면서 정작 중국 내에서 외국 기업 제품을 훼손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president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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