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교수 '타자의 추방'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과격 이슬람 단체의 폭탄 테러와 자기 모습을 찍는 셀프카메라(셀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현상은 언뜻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극단적인 폭력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문화 사이에서 유사성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피로사회', '투명사회'를 쓴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학 교수는 신간 '타자의 추방'(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테러 증가와 셀카 유행의 원인을 타자(他者)의 소멸에서 찾는다. 그는 책의 첫 문장에서 "타자가 존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선언한다.
타자는 낯선 존재,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타자와 접촉하고, 타자에 의해 압박을 받으며 살아왔다. 예컨대 1653년 제주도에 도착한 네덜란드인 하멜과 조선인은 서로에게 타자였다.
그런데 교류가 활발해지고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에는 타자가 사라졌다.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는 변화는 세상을 온통 익숙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으로 인해 세계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이제 지구 상에 낯선 곳, 낯선 존재는 거의 없다.
항상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던 인간에게 낯선 존재의 소멸과 익숙한 것들의 증가가 반드시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회를 더 안전하고 예상 가능하도록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타자의 부정성을 거부하는 시스템은 자기파괴적인 특징을 나타낸다"고 단언한다. 같은 것만 있는 사회는 임계치를 넘어서면 더는 생산적이지 않고 파괴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감염은 타자, 즉 미생물의 침투로 인해 발생하지만 미생물은 몸에 항체를 만들어주는 역할도 한다.
또 저항의 대상인 타자가 없어지면 '자기실현'이라는 맹목적인 믿음 속에서 자신에게만 집중해 스스로를 착취하는 일도 벌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테러와 셀카는 타자의 소멸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테러리즘의 근저에는 '나는 옳고, 타자는 그르다'는 인식이 있다. 자기 민족만을 중시하는 극우 민족주의도 타자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발로다. 저자에게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유럽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는 적이 아닌 형제다.
그는 셀카를 타자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사그라지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욕망이 거세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한다. 현대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수많은 셀카 사진은 불안한 자아를 표현하려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타자가 사라져 문제가 되는 세상이라면 타자를 되살려야 한다. 익숙한 것만이 범람하는 사회를 구원할 방법은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저자는 "우리는 삶을 다시 타자로부터, 타자에 대한 관계로부터 새롭게 봐야 한다"며 "타자를 경청하고 타자에게 대답하는 책임의 언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이 책은 얇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문장은 간결하고 명료하나, 내용은 쉽지 않다.
이재영 옮김. 133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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