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정은 공포정치 심해질수록 공개활동 더 열심히"…태영호 문답

입력 2017-03-04 05:00   수정 2017-03-04 08:38

[단독] "김정은 공포정치 심해질수록 공개활동 더 열심히"…태영호 문답

"보위성 수장 김원홍 연금됐어도 사업 진행 차질 없어"

"암살에 쓰인 화학무기, 보위성 산하 공장서 만들었을 것"

"김정철 '보위성 부상설' 사실무근일 것…감당 못해"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홍국기 기자 = 김정남 암살사건 이후 신변안전의 위협에도 공개활동을 강행하고 있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망명 이후 연합뉴스와 두 번째 인터뷰를 했다.

태 전 공사는 4일 김정남 암살사건과 이로부터 촉발된 북한의 외교전략과 도발 가능성 등에 대한 견해를 분명하고 일목요연하게 밝혔다.

인터뷰 말미에는 "암살 위협에 눌려 공개활동을 중단하거나 줄인다면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투항하는 꼴"이라며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심해질수록 공개활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다음은 태 전 공사와의 일문일답.


--김정남이 살해당하면 북한이 배후로 지목될 것이라는 사실을 김정은이 예상하지 못했을까.

▲ 북한 체제는 김정은의 장기집권에 조금이나마 걸림돌이 되거나 위협요소가 되는 것은 무조건 다 제거한다. 북한은 과거 대한항공(KAL) 여객기 폭파, 미얀마 아웅산 테러 등을 감행했다. 그것이 자신들의 국제적 이미지를 훼손시킨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 체제의 장기적인 안전을 보장받는 일이다.



--김정남의 죽음이 북한 사회를 동요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될까.

▲ 김정남의 존재와 죽음이 북한 내부에 전달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김정은은 자신의 장기집권에 유리한 쪽을 선택했다. 김정남 암살이 장기집권의 확고한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김정남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는가.

▲ 직접 김정남을 본 것은 1990년대 말 김정남이 스위스에서 돌아와 고려호텔에 머물렀을 때다. 당시 고려호텔에서 외무성 행사가 자주 있어서 김정남을 여러 차례 봤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김정남은 할 일도, 시간을 함께 보낼 동료도 없어 보였다. 저녁에 고려호텔 지하에 있는 가라오케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김정남 암살사건은 북한이 미국과 1.5트랙 접촉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기관끼리 조율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인가.

▲ 사건 뒤처리는 외무성이 전면에 나서서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파장이 큰 이런 일은 사전에 외무성에 알려줘서 준비하게끔 하는 것이 응당하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런 일을 할 때 극소수에게만 지시를 내린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서도 극히 일부만 이 일을 알았을 것이다.



--영국에 있었을 때 김정은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은 적이 있는가.

▲ 내가 테러 활동에 개입한 적은 없다.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을 영국에서 수행한 것이 유일하게 직접 지시를 받은 일이다.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했고, 이 일은 대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3층 서기실로부터 지시를 받아 집행하고, 보고도 내가 직접 했다. 북한은 철저한 종적 체계다. 횡적 협의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원홍 보위상의 해임 상황에서 보위성이 김정남 암살을 주도한 것도 조금 전에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인가.

▲ 그렇다. 부처의 수장도 모르게 일이 집행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설사 보위성 수장이 연금되고, 그 밑에 사람들의 목이 날아갔다고 하더라도 보위성의 사업은 하나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해외 공작은 정찰총국 소관 아닌가. 김정남 암살 배후는 보위성인데.

▲해외에서 외국인과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작전은 정찰총국이 한다. 그러나 해외에 있는 북한의 이단자를 처리하는 일은 보위성이 한다. 김정남은 외국인이 아니므로 사업상 보위성의 몫이다. 또 이번 암살 작전에는 화학무기가 사용됐다. 북한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할 권한은 군대에 있지만, 화학탄 생산 공정까지는 보위성 소관이다. 따라서 이번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화학무기는 보위성 산하의 공장에서 만들어졌을 소지가 다분하다.



--최근 김정철이 보위성 부상이며 김원홍 숙청을 주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 사실무근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철이 그 어떤 직책을 가지거나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명백히 이야기할 수 있다. 영국에 왔을 때 나흘 동안 같이 지내보니 음악 외에는 그 어떤 문제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또 건강상 일정한 직무를 가지고 임무를 감당할 수준이 안된다.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김정철 개인사를 밝히고 싶지는 않다.



--고모부 장성택이나 이복형 김정남을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는 김정은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 김정은이 자라온 환경과 관련이 있다. 아버지 김정일 집권 시기에도 가문 내 숙청이 있긴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숨겨진 아이였다. 김정일은 (셋째 부인 고용희 사이에서)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낳고 스위스로 보냈다. 김정일 가문에서도 김정은의 존재를 몰랐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어울려 살면서 집안이라는 개념 형성되고, 가문의식과 연대의식이 생긴다. 김정은이 김정일과 다른 점은 가문과 친척에 대한 연대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하늘에서 어느 한순간에 내려온 존재와 같다. 그래서 집안사람들의 처형에 조그마한 주저함이나 심리적인 불안이 없는 것이다.



--북한은 올해 백두산위인칭송대회를 비롯해 김씨 일가 관련 각종 기념일을 대대적으로 치를 계획인데.

▲ 김정은이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백두혈통이다. 대회의 목적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세습 백두혈통을 북한 주민들에게 완전히 각인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김정남이 얼마나 불편한 존재였겠나. 그래서 물리적으로 김정남의 존재를 없애버리는 것이 김정은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국제사회가 김정남 암살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자 북한이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려는 모습을 보이는데.

▲ 리길성이 중국에 간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최근 중국이 북한산 석탄수입을 전면금지하고, 북한이 이를 전면 비방하면서 양국 간의 관계가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외무성은 하루빨리 중국의 반북 제재 도수를 약화하려는 목표가 있다. 둘째, 김정남 암살사건은 북한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가 중요한데, 북한이 VX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면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취급할 문제다. 안보리에서 만일 이 건으로 북한에 추가제재를 가하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화학무기 사용국이 된다. 북한은 중국이 이를 막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북한이 화학무기 사용국이 되면 중국은 지금보다 더 큰 부담을 안게 된다. 그래서 중국은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결의가 나오지 못하도록 거부권을 행사하고, 결의가 채택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북한이 중국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 중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쓰지 않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김정은 정권의 안정 가운데 후자를 선택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면 한국과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아주는 완충지대를 잃게 되고, 이는 중국에 큰 전략적 손실이다. 북한은 중국의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김정은은 어떤 경우에도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셈법을 가지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광분하는 것이다.



--북한 총참모부가 한미훈련에 대해 초강경 대응조치로 맞서겠다고 위협했다. 올해 훈련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미국 전략 무기들이 들어오는데, 북한이 실제 도발에 나설까.

▲ 북한은 전면적인 대화·협상 모드나 정면 돌파작전 가운데 하나를 택할 것이다. 핵실험이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처럼 큰 도발을 통해 이목을 돌리고, 정세를 긴장시키면서 대화·협상론이 고개를 들게 하려고 여러 측면에서 움직일 것이다.



--다음 달 15일은 김일성 생일 75주년이다. 북한이 어떻게 기념할 것으로 보나.

▲ 도발 가능성이 충분하다. 북한은 외부의 압박이 가중되면 이런 제재에 위축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간다. 핵실험, ICBM 시험발사, 대규모 열병식과 군사훈련 등으로 맞받아칠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 있을 때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

▲ 북한은 내부적으로도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전쟁이 나면 공군과 해군 전력은 한국에 안 된다는 북한 내 인식이 강했는데, 천안함 사건 이후 해군끼리 붙어도 자신이 있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런 말이 도는 것을 보면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김정은이 이복형도 죽이는데 나에게는 무슨 짓인들 못 하겠나. 암살 위협 눌려 공개활동을 중단하거나 줄인다면 김정은의 공포정치 투항한 꼴이 될 것이다.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심해질수록 공개활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

redfla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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