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베이징에서 평양행…부인, 두 자녀 등 가족 출국시도 불발
'김정남 암살' 유일한 신병확보 北용의자…증거불충분 석방·추방에 배후규명 난관
(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김상훈 황철환 특파원 = 김정남 암살사건의 용의자로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된 북한 국적 리정철(46)이 3일 석방과 함께 추방됐다.
리정철은 이날 오후 6시 25분(현지시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중국 베이징행 말레이시아항공 MH360편으로 출국했다. 그는 4일 베이징에서 북한 고려항공편으로 평양으로 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리정철 출국 때 2명의 북한대사관 직원이 동승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서 거주해온 리정철의 가족들은 이날 공항에서 목격됐지만, 함께 출국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북한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공항에 도착했으나 리정철의 추방과정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차량을 에워싸자 사라졌다.
리정철이 탄 항공기 기내에서는 이들이 목격되지 않았다. 현지 언론은 이들이 북한대사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앞서 리정철은 이날 오전 8시 50분께 현지 세팡경찰서에서 풀려났다.
초췌한 모습으로 방탄조끼를 입고 나타난 리정철은 호송용 경찰 세단을 타고 경찰 오토바이와 순찰차 등의 호위를 받으며 경찰서를 출발했다. 그는 출국에 앞서 말레이시아 이민국에서 최종 추방 절차를 밟았다.
리정철은 지난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피살된 것과 관련, 북한 국적 용의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검거됐다. 사건 발생 나흘 만에 붙잡혔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결국 석방됐다.
모하메드 아판디 말레이시아 검찰총장은 2일 "(김정남) 암살사건에서 그의 역할을 확인할 충분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며 "유효한 여행 서류가 있지 않은 그를 석방한 뒤 추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리정철이 북한으로 도주한 용의자들에게 차량을 제공하는 등 범행을 지원한 정황을 포착했지만, 그가 혐의를 계속 부인하는 데다가 물증 확보에도 실패하자 검찰이 기소를 포기했다.
리정철이 약학과 화학 전문가로 알려졌지만, 김정남 암살에 쓰인 독극물과의 연관성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당국은 리정철이 현지 건강식품업체에 위장 취업한 점을 문제 삼아 이민법 위반 혐의를 적용, 추방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리정철에 대해 재입국 금지 조치도 했다.
김정남 피살과 북한의 연결고리로 유일하게 신병을 확보한 리정철의 추방으로 이번 사건의 진상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찰이 이번 사건의 용의자 또는 연루자로 지목한 8명의 북한 국적자 가운데 리지현(33), 홍송학(34), 오종길(55), 리재남(57) 등 4명은 범행 당일 출국, 평양으로 도피했다.
또 북한대사관 2등 서기관 현광성(44),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37), 이지우(일명 제임스, 30)는 아직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들이 북한대사관에 은신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현광성은 면책특권을 가진 외교관 신분이어서 자발적 협조 없이는 체포나 수사가 불가능하다.
경찰은 김욱일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현광성의 신병확보를 위해 외교부를 통해 북한대사관에 협조 공문을 보내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으나 실효성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 처벌은 2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 베트남 국적의 도안 티 흐엉(25)이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지난 1일 기소됐다.
말레이시아 형법상 이들의 유죄가 확정되면 사형에 처하지만 이들은 김정남을 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의자들에게 속아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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