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봄이 오기까지 시슐리의 '길냥이'를 부탁해

입력 2017-03-04 09:17  

이스탄불에 봄이 오기까지 시슐리의 '길냥이'를 부탁해




(이스탄불=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작년 여름, 4년 만에 다시 찾은 이스탄불은 분위기가 전과 많이 달랐다. 거리에 히잡을 쓰거나 눈만 드러낸 검정 니캅 차림이 부쩍 많아진 게 느껴졌다. 뉴스는 대개 대통령 얘기로 시작했다. 이스탄불 번화가와 수도 앙카라, 남동부 국경지역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테러가 벌어졌다.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만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나른했다.






터키인은 고양이를 유난히 예뻐한다. '캣맘', '캣대디'가 도처에 있다. 번화가든 주택가든 곳곳에 '길냥이'(길고양이를 가리키는 인터넷 용어)가 먹게끔 고양이 사료와 물그릇을 놓아둔다. 서울의 길고양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순간 움찔하고는 쏜살같이 몸을 숨기지만, 이스탄불에선 누군가 깔아준 박스 위에서 졸며 한낮 더위를 피한다. 문이 열린 카페나 상점이 자기 집인 양 들어가서 쉬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맘에 드는 손님에게 손길을 허락하고 아양을 떨기도 한다.






개보다 고양이를 예뻐하는 문화는 삶에 뿌리내린 이슬람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노벨상 작가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 바로 그런 설명이 있다. 소설에 화자로 등장하는 '개'는 독자를 향해 이렇게 불평한다.

"순례자들과 성직자들이 우리 개들을 좋아하지 않는 문제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당신 옷자락 위에 잠든 고양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옷자락을 자른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언자께서 고양이에게 베푼 이 섬세한 배려를 우리 개들은 받지 못했다는 것과, 고양이놈들과 우리 사이의 오랜 불화를 근거로, 어리석은 인간들은 무함마드가 개를 싫어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스탄불의 청담동' 시슐리구(區) 니샨타시의 명품거리 지척엔 '고양이 공원'이 있다. '마츠카 사나트 공원'이란 공식 명칭보다는 고양이 공원 또는 '고양이 천국'으로 더 익숙하다. 이곳 고양이들은 공원을 어슬렁거리다 무료하면 화려한 쇼윈도 앞에 터를 잡고 낮잠을 잔다. 부촌 니샨타시를 벗어나 집시촌이 있는 보몬티 언덕을 오르면 곳곳에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고양이 피난처가 보인다. 바닥의 냉기와 눈을 피할 수 있게끔 비닐로 단단히 감싼 박스 여러 개가 각목이나 벽돌 단 위에 올려져 있다.






고양이 천국 시슐리엔 명품거리와 집시촌이 공존하고, 무슬림과 아르메니아계가 섞여 살며, 몽골인과 흑인 커뮤니티가 모인다. 터키 최대 한인교회도 이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다양성을 수용하는 지역정서가 흐른다. 대표적인 비판 언론 줌휴리예트의 이스탄불본부가 이곳에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 집시촌이 있는 보몬티 언덕 골목길에는 한눈에 타향 출신으로 보이는 길냥이 하나가 있었다. 한쪽 눈이 푸른색이고 다른 눈이 호박색인 '오드 아이'(짝눈)에 흰 모색은 영락없는 '반 고양이'(Van Cats)의 모습이다. 동쪽으로 1천700㎞ 떨어진 반 호수 출신의 '이방' 고양이도 시슐리가 편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이스탄불의 지난 겨울은 혹독했다. 몇 차례 폭설과 추위가 휩쓸었고 정전이 잦았다. 그 많던 시슐리 길냥이들이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골목길 어귀 추위 피난처도 비어 있기 일쑤였다. 벌써 3월인데, 눈에 띄는 녀석들이 작년 가을의 반의반도 안 된다. 당국에 끌려간 줌휴리예트 신문의 무라트 사분주 편집국장과 동료 기자들의 책상은 여전히 비어 있다. 한인 사회의 한 유력 인사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45일간이나 옥살이를 했다. 보몬티 언덕의 개성 넘치는 짝눈이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시슐리의 고양이들이 나른한 자태로 골목길을 어슬렁거려야 진짜 봄이다. 이스탄불의 주인들이여, 봄이 가득하기까지 시슐리의 길냥이들을 부탁한다.




tr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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