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네이버·SK텔레콤 등 의욕적 투자 나서
'후발 추격'에 기술력 부족 절감…中에도 열세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작년 3월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AI 대중화 원년'을 열며 국내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AI 개발 및 출시 경쟁에 불이 붙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세기의 대국'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AI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 점도 국내의 AI 붐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단 국내 AI 개발은 수년 전부터 계속된 외국의 선행 연구를 뒤따르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빠른 추격자) 전략에 치중하는 데다, 축적 기술력이 부족해 갈 길이 멀다는 평이다.
국내 AI 연구의 선두에는 삼성전자가 서 있다. 삼성전자는 작년 10월 '갤럭시 노트7 리콜' 위기 속에서도 미국의 유명 AI 개발사인 '비브 랩스'를 전격 인수했다. 이어 이달 말 공개하는 새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8에 최고 수준의 자체 AI 음성 비서를 탑재해 애플·구글과의 경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미 관련 영역에서 수년의 역량을 축적한 애플·구글을 상대로 삼성전자가 맞대결을 벌이기는 역부족이라는 시각도 팽배하다.
애플은 무려 6년 전인 2011년 AI 비서 '시리'를 출시해 인지도 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구글도 2012년 스마트폰용 기반 AI 서비스 '구글 나우'를 선보여 5년 이상의 실전 경험을 보유한 상태다.
국내 최대 검색 포털인 네이버도 AI 연구개발(R&D)에 열심이다. 올해 1월 분사한 R&D 전문 자회사 '네이버랩스'를 통해 AI 음성비서 플랫폼(기반 서비스)인 '아미카'와 자율주행차 등에 공격적 투자를 벌이고 있다.
집안에서 AI 기기에 음성으로 날씨를 물어보거나 무인 택시에서 목적지를 검색하는 등의 미래형 AI 서비스를 구현해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경쟁자의 공세에 맞선다는 구상이다.
네이버는 일본·동남아의 '국민 메신저'로서 입지를 굳힌 자회사 '라인'과 함께 인간의 오감을 활용한 AI 서비스인 '클로버'도 개발하고 있다.
네이버의 라이벌인 카카오도 지난 2월 AI 개발 자회사인 '카카오브레인'을 출범시키고 고기능 챗봇(메신저에서 상담·예약 등을 해주는 대화형 AI)과 이미지 검색 등을 위한 기술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내수 이동통신 시장의 포화 탓에 새 먹거리의 발굴이 간절한 SK텔레콤과 KT도 작년부터 AI 제품 발표에 나섰다.
SK텔레콤은 작년 9월 국내 이동통신업계 최초로 원통 스피커 모양의 AI 서비스 기기인 '누구'(NUGU)를 출시했다.
2014년 미국 아마존닷컴이 발매한 AI 스피커 '에코'(Echo)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제품으로, 실제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교통 안내·음식 주문·집안 기기 제어 등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SK텔레콤은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는 주인의 얼굴을 알아보고 교감할 수 있는 탁상형 AI 로봇도 선보였다.
경쟁사 KT는 올해 1월 IPTV 셋톱박스에 고급 스피커, 전화, 카메라를 결합한 AI 기기인 '기가 지니'를 대항마로 내놨다.
채널·콘텐츠의 검색 등 기본 TV 기능에 공을 쏟은 제품으로 IPTV 중 가장 가입자가 많은 자사 '올레 TV'를 발판으로 삼아 시장 확대를 하겠다는 구상이다.
AI 통번역 서비스도 업체 참여가 활발하다. 통계 기반으로 단어를 짜 맞춰 '외계어'를 내놓곤 하던 예전 번역기와 달리 현행 AI 서비스는 전체 문장의 맥락까지 학습해 통번역 결과가 훨씬 더 자연스럽다.
자동 통번역은 여행·국제 행사·초벌 번역·수출용 게임·채팅 등 용도가 매우 넓어 품질과 안정성만 구현되면 수요가 금세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B2C' 서비스로는 이미 네이버와 한컴 그룹이 각각 '파파고'와 '지니톡'이라는 이름 아래 AI 통번역 제품을 내놓은 상태다.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전문 AI 번역기를 공급하는 'B2B' 시장에서는 시스트란이란 국내 업체의 활약이 눈에 띈다.
시스트란은 애초 미국의 유명 번역 기술 기업이었지만 2014년 한국 업체에 인수됐다. 중동·러시아·아시아 등지의 소수 언어도 고루 AI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한국의 전반적 AI 역량은 미국 등 주요국보다 크게 뒤떨어진 상태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1995∼2014년 사이 20년 동안 미국·일본·유럽·중국·한국 특허청에 등록된 AI 특허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10대 최다 특허 보유 기업 중 한국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10대 특허 보유 기업 중 9곳은 마이크로소프트·구글·IBM 등 미국계 기업이었고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의 사무기기 업체 '리코'가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IITP가 AI 및 인지 컴퓨팅 기술력을 2015년 기준으로 자체 평가한 결과에서도 한국은 미국보다 2.4년 뒤처졌으며, 중국과도 0.8년 격차로 추월당했다.
삼성·네이버 등 주요 기업은 정부와 협의해 작년 10월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을 설립하는 등 R&D 강화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노력의 구체적 성과가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t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