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사립 안 가리고 연합체제 확산…교육부, 재정지원 내세워 압박
"제살 깎아먹기 정원 감축 그칠 것" 우려…"고등교육 재정 확충 급선무"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지난해부터 꿈틀거리던 대학 간 합종연횡이 본격화됐다.
지역 거점 국립대와 소규모 대학을 연계하는 교육부의 국립대 발전 방안이 재정 지원 사업으로 가시화되면서 대학 간 '연합체제'가 속속 결성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국립대 울타리를 넘어 국립대와 사립대 간, 사립대와 사립대 간 연합으로 확산하고 있어 대학가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절실한 대학들은 앞다퉈 연합체제를 결성하지만, 실효성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충북 충주의 한국교통대와 청주 한국교원대는 지난달 13일 상대 학교의 교과 과정과 교육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교육자원 교류협약을 맺었다.
지역대학 간 교육 과정 및 자원 공유 사례로는 충청권에서 처음이다.
국립대인 이들 대학은 재학생이 상대 학교에서 들은 강의와 취득한 학점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공동 연구, 진로 및 학생 관련 프로그램, 봉사활동 교류, 각종 기자재, 교육·복지 시설 공동 활용 등 자원 공유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교통대는 불과 이틀 뒤인 15일에는 사립대인 건국대 충주 글로컬캠퍼스, 제천 세명대, 경기도 안성 한경대와도 교육 과정 및 자원 공유 등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같은 날 경동대와 동양대, 예원예술대, 중부대 등 4개 대학도 '경기북부 연합대학'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들 대학은 교육 과정을 공동 운영하고 교수 교환수업 프로그램을 통해 각 대학 교수가 연합대학에서 강의한다.
시설도 개방해 연합대학 소속 학생과 교직원은 4개 대학의 도서관, 실험실, 체육시설, 강의실, 실습실 등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취업캠프를 비롯한 각종 행사도 공동 진행한다.
14일에는 부산가톨릭대와 부산외국어대, 영산대도 연합대학 협약서를 맺었다.
앞서 강릉원주대와 강원대는 지난 1월 전국 최초로 국립대 연합대학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각 대학이 경쟁적으로 서둘러 연합대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발되는 사례도 나온다.
전북대는 전주교육대에 연합대학 추진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
전북대는 대학 경쟁력 확보를 위해 연합대학 구축이 절실하다는 판단에 따라 컨소시엄을 제안했지만, 전주교대는 흡수 통합에 대한 우려 등을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교대에서는 연합대학이 대학 간 통합으로 이어지면 위상이 전북대 산하 단과대 수준으로 추락하고, 교수와 직원들도 구조조정에 내몰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널리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대학들이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연합 전선'에 속속 뛰어드는 것은 재정 지원 권한을 쥔 교육부가 '대학 간 자원 공유'라는 명분을 내세워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앞으로 4년간 매년 1천억원을 투입해 지역 거점 국립대와 주변 소규모 대학들의 기능을 연계하는 국립대 발전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교육부 안은 기능 조정형과 기능 특화형, 기능 통합형 등 세 가지 방식이다.
기능 조정형은 대학·학부·학과·연구소 간 교류가 중심이며, 기능 특화형은 복수의 캠퍼스가 있는 국립대에 캠퍼스 단위 특성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가장 심화한 형태인 기능 통합형은 대학 간 통합이나 정원 감축 형태로, 지역 대학과 거점 대학의 통합까지 염두에 뒀다.
교육부의 이런 방침은 대학 재정 지원 사업에 이미 반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 말 지원 신청이 마감되는 2017년 국립대학 혁신지원사업(PoINT·포인트)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교육부의 사업 공고문과 기본계획안을 보면, 두 가지 신청 유형 중 대학 간 혁신지원 사업은 대학 간 기능의 선택과 집중, 인적·물적 자원 및 교육과정 공유 등 상호 협력을 통한 경쟁력 강화 지원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신청 대학은 다른 대학과의 자원 공유 등에 관한 실적과 향후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평가 지표에도 자원 공유 정도가 별도 항목으로 돼 있고, 사립대와의 자원 공유도 가능하다는 설명도 달렸다.
오는 30일 사업 신청 마감을 앞두고 대학 간 '자원 공유' 협약이 쇄도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올해 최대 재정 지원 사업으로 130여개 대학에 3천271억원을 투입하는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링크 플러스) 육성 사업이나 내년 상반기 대학 구조개혁 2주기 평가에도 '연합대학' 문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학가와 교육단체에서는 대학 교육이 위기에 놓인 것은 맞지만 교육부가 추진하는 연합대학 정책은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2000∼2008년 국립대 통폐합 정책에서 드러난 것처럼 교육의 질적 향상과는 거리가 멀고, 제살 깎아먹기식 구조조정을 통해 정원 축소라는 결과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근본적 원인 진단이 없는 대증 요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학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대학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는 최근 "연합대학은 대학 교육 개혁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정부와 각 대선 후보 진영에 고등교육 재정교부금법 제정을 비롯한 9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김병국 전국대학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연합대학 정책은 재정 지원 수단을 동원해 대학을 줄 세우고 길들여 고등교육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고등교육 재정 확충이 이뤄져야 대학 교육의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k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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