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과 교훈의 역사' 마늘파동, 사드 보복으로 재조명

입력 2017-03-04 16:20   수정 2017-03-04 16:49

'굴복과 교훈의 역사' 마늘파동, 사드 보복으로 재조명

對중국 의존의 그늘…中에 '경제 고리로 압박하니 통하더라' 선례



강대국 상대 외교정책 '시기' 중요성·정보 은폐의 '후과' 교훈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강도를 더해가는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배경과 관련, 외교가에서는 2000년대 초반 한중 마늘 파동이 자주 회자된다.

중국 입장에서는 '경제 문제를 고리로 한국을 압박하니 통하더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한국에는 중국의 경제적 압박에 굴복한 쓰라린 기억으로 남은 일이다.

2000년 6월 한국 정부가 농가 보호를 명분으로 중국산 냉동 및 초산 마늘에 적용하는 관세율을 10배 이상(30%→315%)으로 올리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하자 중국은 일주일만에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금지하는 보복을 했다.

국제규정에 어긋난 중국의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는 마늘에 대한 관세율을 사실상 이전 수준으로 돌리기로 하면서 1개월여만에 '항복'했다. 당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비가입국이어서 법적 문제 제기의 통로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2000년 7월 31일 한중이 서명한 타결안에 의하면 중국은 한국산 휴대폰 수입 중단을 풀고 한국은 2002년까지 3년간 매년 3만2천∼3만5천㎏의 중국산 마늘을 30∼50%의 관세율로 사오기로 했다.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협상을 지휘한 한덕수 전 총리는 그로부터 2년 뒤 "1천500만 달러 상당의 중국산 마늘 때문에 5억 달러에 달하는 우리의 수출이 피해를 보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우선 마늘 파동은 높은 대(對) 중국 무역 의존도의 그늘을 보여줬다. 사드와 관련해 중국이 문화, 관광 등 영역에서부터 강도높은 보복 조치를 취하는 데는 마늘 파동에서 '승리'를 거둔 기억이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다고 몇몇 외교 소식통들은 지적한다.

더불어 이 일은 한국 국내적으로도 중요한 교훈들을 남겼다.

우선 상대국이 반발할 조치를 취할 때는 그 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마늘 파동이 있었던 2000년 당시는 중국이 WTO가입을 위해 미중간에 타결된 농업합작협의에 미국의 긴급수입제한 권리를 '고육지책'으로 포함한 직후라 한국의 마늘 관련 세이프가드에 강경대응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사후 지적이었다.

결국 강대국 상대 외교에서 민감한 정책의 시행 시기에 신중을 기할 필요성과 함께 상대국 내부 동향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 당국은 뼈아프게 절감해야 했다.

아울러 한때 쏟아질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투명한 정보 공개를 하지 않을 경우 추후 엄청난 후폭풍을 맞게 된다는 점도 교훈이었다.

마늘 협상 부속합의서에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가 2년반 후에 종료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음에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2002년 7월 한덕수 당시 경제수석과 서규룡 당시 농림부 차관이 사임했고 정부의 신뢰는 크게 하락했다.

마늘파동에 이어진 사드 갈등을 계기로 중국이 과연 '대국'의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이 쏟아지는 가운데, 외교관계에서 종종 있는 보복 조치에 면밀히 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온다.

외교부 동북아 국장을 지낸 조세영 동서대 교수는 4일 "그것이 세련되냐, 거친 것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국가 관계에서 상대국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조치를 취할때는 우리 쪽도 불이익을 받는 것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며 "일본이 부산 소녀상에 반발하며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을 선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마늘파동 뿐 아니라 2005년 김치 기생충알 파동 등의 전례에서도 보듯 중국 외교에 '보복'의 습관이 있다고 지적한 뒤 "중국이 옹졸하지만, 옹졸하다고 비판만 하기 보다는 외교관계에서 예상되는 불이익이나 보복 조치가 있을 때는 그것을 감안하면서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하는 측면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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