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 구청·경찰 '나 몰라라'…시민이 직접 치워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김선호 기자 = 4일 자정께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누군가가 고의로 자전거를 묶어 놓고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전날 오후 10시 20분께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 2명이 소녀상 주변에 '소녀상을 이전하라'는 등의 선전물을 붙인 뒤 차에 싣고 온 폐가구를 버리거나 쓰레기 봉지를 가로수와 가로등에 덕지덕지 매달았다.
이들은 자신의 차량 번호판을 찍은 한 시민을 차량으로 추격하기도 했다.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잇따라 저지른 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 때 어린 나이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로 고통받은 이들을 기리는 소녀상을 희화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영사관을 경비하는 경찰은 이들의 행위를 지켜보기만 했고, 관할 부산 동구청은 '나 몰라라'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5일 부산겨레하나와 경찰 등에 따르면 4일 자정께 누군가가 소녀상 의자 뒤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자물쇠로 묶었다.
주변에는 전날보다 더 많은 쓰레기가 쌓였다. 이 때문에 소녀상 주변이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일본영사관 주변에 24시간 배치돼 경비를 서는 경찰은 이 같은 상황을 발견하고도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불법 광고물 부착과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 업무는 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이유에서다.
경찰 관계자는 "소녀상 설치를 놓고 찬반 의견이 있고, 쓰레기 무단투기 등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관할 구청에 쓰레기 수거를 요청했지만, '일단 놔두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밝혔다.
최근 소녀상 주변에 철거를 주장하거나 각종 정치 구호가 담긴 불법 선전물이 나붙고 쓰레기가 방치되고 있지만, 동구청은 이를 관리할 명분이 없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겨레하나 회원들은 5일 오전 11시께 소녀상에서 자전거를 떼어냈다.
자물쇠는 절단기로 1분 가까이 작업을 하고 나서야 끊어질 정도로 단단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경찰은 "재물손괴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현장에 출동해 시민단체 회원들의 신원을 파악했다.
부산겨레하나 회원인 김원희(48)씨는 "시민의 정성으로 만든 소녀상에 (누군가가) 몹쓸 짓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을 수 없어서 왔다"면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윤용조 부산겨레하나 정책국장은 "이제 소녀상을 직접 훼손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면서 "경찰에 고소하는 등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국장은 또 "소녀상 주변 쓰레기 무단투기와 불법 선전물 부착 문제에 대해 동구청과 담판을 짓겠다"고 말했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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