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영역, 주어생략 틀리고 문화 고유성 지워"

입력 2017-03-0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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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영역, 주어생략 틀리고 문화 고유성 지워"

조재룡 교수 계간 문학동네서 지적…"'수상 콤플렉스'로 승리"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문학평론가인 조재룡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데버러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영어 번역의 오류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조 교수는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실은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에서 정은진씨의 프랑스어 번역과 비교해 스미스의 영역이 한국어에서 생략된 주어를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한국문화의 고유성도 지워버렸다고 지적했다.

스미스는 원문 "이제 너희 걱정은 다 잊어버렸다"를 "Now you've fogotten all your worries"(이제 너희들은 걱정거리를 다 잊게 되었구나)로 옮겼다. 걱정을 잊은 주체가 원문의 생략된 '나'에서 '너희'로 뒤바뀐 번역이다. 반면 정씨는 "dor?navant, je ne me ferai plus de souci pour vous."(이제 나는 너희들 걱정은 더 하지 않는다)로 올바르게 번역했다. 조 교수는 "흔히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들이 문장의 주어를 찾는 일이 급선무이며, 예서(여기에서) 제 번역을 착수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어가 생략된 구문들에서 이 번역가는 자주 실패에 직면한다"고 말했다.

고유한 한국문화를 어떻게 옮겼는지도 차이가 났다. 한국의 채식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에 등장하는 "사상체질"을 스미스는 "a certain ideology"(특정 사상)라고만 번역했다. 정씨 번역의 경우 "la th?orie des quartre constitutions"(사상체질 이론)으로 옮긴 뒤 "조선의 이제마가 고안한 체질 의학"이라고 각주까지 달았다. 이런 차이를 보면 스미스와 정씨의 번역은 각각 "배제와 존중, 가독성과 충실성"에서 갈린다고 조 교수는 지적했다.




조 교수는 스미스가 화자인 남편의 단언적 문장을 복문으로 옮기면서 "폭력적이고 단순한 남편"을 "우유부단하고 고민에 휩싸인 남편"으로 뒤바꿨다고도 말했다. 번역자의 주관이 개입됐을뿐 아니라 인물의 성격 자체가 원문과 다르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스미스에 대해 "이미지에서 제 번역의 단초를 얻어내, 이미지의 근사치를 연상해내고, 그렇게 낱말을 이 연상의 결과물과 조합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며 "전체적으로 '감'에 의지해, 한국어 원문을 유려하고 화려한 영어로 표현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스미스가 한국문화의 흔적을 과감히 지우고 자신의 문학관을 덧씌웠다며 "원문보다 뛰어난 번역, 원문보다 풍부한 번역, 원문보다 더 감동적인 번역, 원문보다 더 활력이 있으며, 감정을 실현한 번역이 이렇게 탄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미스의 오역 또는 과도한 의역에 대한 지적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나왔다. 조 교수는 여기서 나아가 맨부커상 수상 이후 스미스를 한국문학 세계화의 기수인양 칭송하며 문학을 국가대표 운동경기처럼 여기는 경박한 문화를 꼬집었다.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 번역은 '수상'으로, 아니 '수상' 콤플렉스로 승리한다. 번역은 과도한 열정, 한국사회가 번역에 대해 걸고 있는 막연한 기대치로 승리한다. 번역은 국가가 이끄는 사업의 일환으로 승리를 점친다. 번역은 무모한 기대와 콤플렉스의 역설을 먹고 승리한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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