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씨는 지난해 가을 한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은 아직 인류 보편까지는 수준이 안 올라갔다. 그래서 항상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그는 동서양 철학사를 정리한 자신의 책에 "수준이 떨어져서" 페미니즘을 넣지 않았다고도 했다.
페미니즘은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인식에 한계가 있다는 게 철학계 일부의 주장이다. 페미니즘이 '외눈박이'라는 이런 비판에는 수천 년간 남성의 언어로 쌓아올린 주류 철학이야말로 남성을 보편적 인간으로 상정한 반쪽짜리 철학 아니냐는 반론이 나온다.
여성학자 정희진의 신간 '낯선 시선'(교양인)은 '메타젠더' 인식론을 제안한다. 남녀구분에 얽매이지 않되 그 구별을 통해 권력과 차별이 작동하는 방식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이는 페미니즘이 세상을 해석하는 주된 방법이자 '양쪽 눈'으로 온전히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 틀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저자는 "여성주의를 모르고 앎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러 매체에 쓴 글을 모은 책에서 남성을 보편적 인간으로, 여성은 특수한 존재로 여기는 사고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테면 저자가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의혹에 대해 발언하자 "여성의 시기심이 더 강하다는 사실에 절망한다"는 내용의 메일이 왔다. 이화여대생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에 반대했을 때 한 방송 앵커는 "여대생이 여성 대통령을 반대한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비슷하다. 남성들의 다툼은 노사갈등이나 국제정치 등 보편적 투쟁의 지위를 얻지만 여성간 갈등은 질투나 시기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된다. 저자는 "성차별의 가장 기본적 개념은 여성의 존재를 시민, 노동자, 지식인, 공무원 등 그들이 직접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성 역할'로만 제한하는 규범과 제도"라고 지적한다.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은 타자이자 특수한 존재이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술이나 여성혐오 지적에 대한 반박논리에서는 유독 동등한 존재가 된다.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술이 '남성혐오'라는 반론이 전형적이다. 이런 여혐·남혐 프레임은 일본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책이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탓이 크다. 원래 마땅한 반댓말이 없는 'misogyny'가 '여성혐오'로 번역되면서 남혐이라는 용어의 발단이 됐다.
그러나 혐오는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강자의 감정이므로 '남혐'은 어불성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혐오가 자신과 타인의 인간성을 훼손하는 반면 분노는 자신을 억압하는 대상에 대한 정당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둘은 반대에 가깝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는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대신 여성혐오에 분노하고 저항한다. 304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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