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티 검찰 수사…토착비리 도려내기 '절반의 성공'

입력 2017-03-07 15:31  

엘시티 검찰 수사…토착비리 도려내기 '절반의 성공'

지역 유력인사들 비리 연루 혐의 규명 등 일정 성과

투자이민제 지정 등 정권실세 개입 의혹 못 밝혀내

(부산=연합뉴스) 오수희 기자 = 검찰의 해운대 엘시티(LCT) 비리 의혹 수사가 7일 브리핑을 끝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지난해 7월 21일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엘시티 시행사와 실질 소유주인 이영복(67·구속기소) 회장의 특수관계회사들을 동시다발로 압수 수색하면서 수사의 신호탄을 올린 지 7개월여 만이다.

지난해 2월 부산지검 동부지청이 엘시티 비리와 관련해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등 내사를 시작한 것으로 치면 1년 넘게 이어진 수사가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비리 의혹이 짙은 엘시티 사업 인허가나 특혜성 행정조치를 둘러싼 지역 유력인사들과 엘시티 이 회장 간의 '검은돈' 커넥션을 일정 부분 규명한 것은 검찰 수사의 성과로 꼽을 수 있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3선 해운대구청장을 거친 재선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배덕광(69·부산 해운대구을) 국회의원, 정기룡(60) 전 부산시장 경제특보 등이 엘시티 금품비리 등에 연루된 혐의로 줄줄이 구속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이 허 전 시장의 '비선 참모'로 본 측근 이모(67) 씨와 서병수 부산시장의 최측근 김모(65) 씨도 엘시티 비리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3선 부산시장을 지낸 허남식(68)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은 측근 이씨를 통해 엘시티 이 회장에게서 뇌물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는 바람에 구속은 면한 채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 유력인사는 대부분 "엘시티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엘시티 이 회장에게서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의 장기간에 걸친 수사로 세간에서 의혹으로만 떠돌았던 엘시티 사업 관련 금품 로비 의혹들이 구체적인 범죄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검찰의 엘시티 수사가 상당한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도 있다.

먼저 법무부가 단일 사업장으로는 이례적으로 엘시티 사업지를 투자이민제 적용 대상으로 지정한 것과 포스코 건설이 책임준공까지 내세워 시공사로 엘시티 사업에 참여한 배경, 부산은행이 엘시티 측에 특혜의혹이 짙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해준 것 아닌가 하는 의혹 등은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이들 의혹은 모두 정권 실세가 깊숙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안종범(57·구속기소)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엘시티 민원 관련 메모가 눈길을 끈다.

안 전 수석이 2015년 7월 쓴 것으로 추정되는 업무 수첩에는 '해운대 LCT fund POSCO'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메모 밑에는 '중국 X'와 특정 시중은행과 은행장의 실명이 담겨 있다.

'해운대 LCT fund POSCO'는 안 전 수석이 누군가로부터 자금조달과 시공사 유치 등 엘시티 사업 관련 민원을 받고 쓴 것으로 풀이된다.

엘시티 시행사는 2015년 7월 포스코 건설을 새 시공사로 유치했고 같은 해 9월 부산은행을 주간사로 하는 16개 금융기관과 1조7천800억원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약정을 체결했다.

'중국 X'는 포스코 이전 엘시티 사업 시공사였던 중국건축(CSCEC)이 2015년 4월 시공계약을 해지한 것을, 특정 시중은행과 은행장 실명을 쓴 것은 PF가 성사되기 전 민원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문제는 누가 안 전 수석에게 엘시티 관련 민원을 했는가이다.

검찰은 엘시티 이 회장이 안 전 수석을 통해 하나은행에 PF 관련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이 있다고 했지만, 그 이상은 설명하지 못했다.

세간에서는 엘시티 이 회장이 '친목계'를 함께 했던 국정농단 장본인 최순실 씨에게 시공사 유치와 PF 성사 같은 엘시티 사업 관련 민원을 넣어 안 전 수석에게 전달된 것 아닌가 하는 얘기도 나돌았다.

또 엘시티로부터 검은 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는 현 전 수석과 배 의원, 정 전 특보와 전·현직 부산시장의 측근 2명이 구체적으로 엘시티 비리에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내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실제 이들 중 일부 유력인사는 재판 등에서 "엘시티 이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긴 했지만, 엘시티 사업 관련 청탁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재판에선 엘시티 이 회장에게서 이들 인사에게 건네진 돈의 성격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엘시티 비리수사가 장기간 이어지는 바람에 지역 경제가 크게 위축됐다는 볼멘 소리도 있다.

엘시티 비리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당하고 PF 담당자들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등 홍역을 치른 BNK 금융지주가 사실상 신규 PF 대출을 중단하면서 지역 건설업계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공사 일정이 늦어지는 등 다소간 피해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법조계 한 인사는 "검찰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엘시티 이 회장과 지역 유력인사들 간 검은 유착관계를 밝혀낸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내사를 포함해 1년 넘게 수사가 이어지면서 일부 지역 경제계가 어려움을 겪은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osh998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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