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연습생을 무작위로 빼가는 쟁탈전이 벌어질 겁니다. 악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가요 기획사들은 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연습생 계약서의 불공정약관 조항을 바로잡은 취지는 이해하나 악용될 소지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데뷔가 목표인 연습생에게 계약서 일부 조항이 족쇄가 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업계의 현실을 온전히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공정위는 SM·YG·JYP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로엔엔터테인먼트, FNC엔터테인먼트, 큐브엔터테인먼트,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DSP미디어 등 국내 8개 주요 기획사의 연습생 계약서를 심사해 6개 유형의 불공정약관 조항을 바로 잡았다고 밝혔다.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기획사가 연습생 계약 해지 때 과도한 위약금을 요구하는 조항이다.
이 중 일부 기획사는 연습생 책임으로 계약이 해지되면 투자 비용의 2~3배 금액을 청구하는 조항이 있었지만, 공정위는 직접 투자한 비용에 한해 위약금을 부담하도록 했다. 해당 기획사 중 한 곳의 대표는 이에 대해 "연습생이 계약 도중이라도 실비만 내고 해지할 수 있다면, 스카우터가 중소기획사에서 에이스로 꼽히는 연습생을 쉽게 빼내 대형 기획사로 데려갈 수 있다"며 "SM이 아니라면 1년에 한팀씩 배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소기획사들은 공들인 연습생을 쉽게 빼앗기게 된다. 기획사 간 싸움이 발생할 수 있고 아티스트를 모셔가듯이 쟁탈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다시 말해 먼저 연습생을 캐스팅할 필요가 없으며 트레이닝을 받은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된다"며 "K팝의 강점이 연습생 시스템이란 점에서 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기획사 이사도 "보통 연습생 계약 기간은 3년"이라며 "우리 역시 연습생 계약 해지 때 두 배 위약금 조항이 있으나 돈을 받고자 하는 것보다 일종의 안전장치다. 연습생이 약자이니 공정위의 취지는 이해되지만 3년간 교육한 연습생을 다른 기획사에 빼앗기면 다시 새로운 연습생을 뽑아 교육해야 한다. 오히려 작은 기획사들에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연습생 계약 기간이 끝난 뒤 같은 기획사와 전속체결 의무를 지도록 하는 일부 기획사의 약관도 우선 협상 의무만 부담하는 수준으로 대폭 완화했다. 이 조항이 법률상 보장된 제3자와의 계약 체결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연습생이 연예인 전속계약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대해서도 복수의 기획사 관계자들은 "연습생을 뽑는 이유는 데뷔를 시켜 스타로 만들려는 것"이라며 "트레이너를 고용하고 연습실을 만드는 등의 절대적인 투자를 하는 건 전속 의무를 보장받기 위함이다. 계약 기간을 마친 연습생이 다른 곳과 계약하면 다시 연습생을 키우는 비용이 발생한다. 기획사가 학원이란 생각으로 접근한 것 같다"고말했다.
반면, 기획사가 연습생에게 계약 해지를 요구할 때 30일간의 유예기간을 두도록 하거나,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사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개선은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이번 시정 조치에 해당된 기획사의 본부장은 "연습생이 약자라는 선의의 차원에서 이 부분들은 납득할 만한 개선"이라고 말했다.
일단 8개 기획사는 공정위의 약관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된 조항을 모두 고쳤으며 현재로서는 다른 기획사로 대상이 확대되진 않았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올해 업무 계획에 연습생 표준계약서 제정과 보급이 포함돼 있어 향후 모든 기획사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가요계는 연습생 표준계약서를 제정할 때 산업 주체와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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