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 대칭 깨짐' 현상, 시간에 대해서도 발생"
이론적 아이디어 제안 5년만에 실험으로 구현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과학 학술지 '네이처' 9일자 표지로 실린 미국 메릴랜드대와 하버드대 연구팀의 '시간 결정'(time crystal·時間結晶) 구현 논문 2편은 자연에서 흔히 나타나는 '자발 대칭 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이라는 현상이 시간 이동에 대해서도 발생한다는 점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간적 주기성을 지니는 결정과 시간적 주기성을 지니는 시간 결정은 모두 '대칭'(symmetry)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리학의 근본 법칙들은 모두 공간이나 시간에 따라 불변(不變·invariant)인 형태를 갖고 있으며, 이런 성질을 대칭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공간을 평행이동하거나 회전이동하더라도, 또 시간이 흐르더라도 물리학의 근본 법칙이 변하지는 않는다. 이를 각각 '공간 병진(竝進) 대칭'(spatial translational symmetry), '회전 대칭'(rotational symmetry), '시간 병진 대칭'(time translational symmetry)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근본 법칙이 대칭적이라고 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반드시 대칭적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또 물리 시스템이 대칭적이라고 하더라도 이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상태'가 반드시 모두 대칭적이라는 보장도 없다.
예를 들어 바닥에 똑바로 세워 놓은 원뿔의 꼭짓점에 구슬을 올려놓는 경우를 생각하면 시스템 자체는 분명히 회전 대칭적이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든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구슬을 꼭짓점에 올려놓으면 그대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 바닥으로 내려가면서 배치 방향이 정해져 버려 회전 대칭이 깨진 비대칭 상태가 된다.
이런 식으로, 근본 법칙과 시스템은 엄연히 대칭적인데도 상태는 비대칭이 되어 버리는 것을 '자발 대칭 깨짐'이라고 한다.
자발 대칭 깨짐의 예는 자연계에 매우 많이 있다.
자석이 그 중 하나다. 자화(磁化) 되기 전 금속의 전자기적 성질은 모든 방향에 대해 회전 대칭이지만, 일부 금속의 경우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서 자화가 이뤄지면 거의 같은 방향으로 N극과 S극이 정렬되면서 자석이 된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바로 결정이다.
결정은 원자들이 일정한 공간적 주기성(periodicity)를 가지고 배치된 상태를 가리킨다. 결정이 형성되기 전에는 물질이 균질해서 '특별한 위치'나 '특별한 방향'이 없지만, 결정이 형성되면서 기준점이 정해지면 이를 기준으로 원자들이 배치되면서 '특별한 위치'와 '특별한 방향'이 생긴다.
이런 의미에서 결정은 '연속적(continuous) 공간 대칭'이 자발적으로 깨져 버리고, 그 대신 일정한 공간적 주기를 지닌 '비연속적(discrete) 공간 대칭'이 들어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강한 공간 대칭이 깨지고 그보다 약한 공간 대칭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현상이 공간에 대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바로 '시간 결정'이다. '연속적 시간 병진 대칭성'이 자발적으로 깨지고 '비연속적 시간 병진 대칭성'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결정에서 격자의 크기에 해당하는 고유의 '공간 주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 결정은 고유의 '시간 주기'를 가진다.
'시간 결정'이라는 아이디어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석좌교수이며 200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이론물리학자 프랭크 윌척이 2012년에 처음 제안했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열린 스티븐 호킹 교수 칠순 기념 심포지엄에서 이 개념을 설명하면서 "자연계에서 '시계'가 저절로 등장한다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설명했다. 시간적 주기성을 지닌 현상이 자발적 대칭 깨짐을 통해 생겨난다는 점이 시간 결정의 핵심 특징이라는 의미다.
시간 결정의 개념은 그 후 여러 과학자들의 반박·재반박과 아이디어 제시·증명 등 논쟁 과정을 거쳐 이론적으로 정립됐다. 이 과정에서 시간 결정이 만들어질 수 있으려면 충족돼야 할 구체적 조건이 밝혀지고, 실험으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나왔다.
평형 상태에서 존재할 수 있는 결정과 달리, 시간 결정은 비평형 상태에서만 존재할 수 있어서 외부로부터 주기적 자극을 받아야 한다.
또 열역학적으로 '안정 상태'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물질 상태라는 점도 특징이다.
메릴랜드대와 하버드대 논문 양쪽에 공저자로 참여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노먼 야오 교수는 "(윌척 교수가 2012년 내놓은) 첫 아이디어보다는 덜 희한하지만, 여전히 '쩔게 희한하다'(fricking weird)"고 말했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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