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이회창 지원위해 정치 입문…선친 후광에 '선거의 여왕' 등극
'천막당사'로 탄핵역풍 버텼지만…자신도 탄핵당하고 당에서 쫓겨날 판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10일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간판을 바꿔달아온 보수정당과 동고동락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10일, 박근혜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차기 대권을 놓고 맞붙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돕기 위해서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경제난이 한창 이슈인 때였다. 선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은 외모로 눈길을 끈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국민신당 후보로 나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선친의 후광을 업고 이회창 후보의 선거 지원유세로 이름을 날린 덕에 이듬해인 1998년 고향인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공천을 받아 '박근혜 초선 의원'이 됐다.
이후 16∼19대 총선에 연거푸 당선된 것을 발판 삼아 2012년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누르고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6년의 여의도 생활과 4년의 청와대 생활을 마칠 때까지 한나라당과 이를 이어받은 새누리당, 그리고 올해 이름을 바꾼 자유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의 '둥지'였다.
2002년 '대권 재수생'인 이회창 총재에게 당권을 대권과 분리하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탈당, 한국미래연합을 만들었던 게 유일한 '외도'였다.
이 과정에서 대구·경북(TK)과 보수 진영에서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 나서는 선거마다 뜻밖의 성과를 내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2004년 총선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체제로 전환, '천막당사'로 121석을 건져 몰락 위기에서 빠져나왔다.
2012년에도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총선과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찬란했던 정치역정은 '최순실 사태'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당해 물러난 첫 사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박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할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는 논란이 됐던 박 전 대통령의 당적(黨籍)과도 무관치 않다.
지난해 말 국회의 탄핵 의결 직후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은 '1호 당원 박근혜'의 징계를 요구했으나, 친박(친박근혜)계의 조직적인 방해에 가로막힌 바 있다.
청와대에서 쫓겨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당내에선 다시 징계 요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존재가 두 달 남긴 대선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판단될 경우 제명까지 거론될 수 있다.
일각에선 지도부가 박 전 대통령의 자진 탈당을 권유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성정을 고려하면 제 발로 나가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현행 당헌·당규상 박 전 대통령이 뇌물죄로 기소되면 당원권은 정지된다. 정당법에 따라 피선거권이 박탈되고 자동으로 당에서 제명되려면 확정판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전에라도 한국당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 등 당헌·당규에 명시된 사유로 박 전 대통령을 징계할 방법은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7일 "당헌·당규에 따라 움직이지, 인위적으로 우리 당이 (징계를) 하지 않겠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지지층마저 대부분 등을 돌렸다고 판단되면 대선에 대한 부담 등을 고려해 '읍참마속'을 단행할 여지는 있다.
한국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박 전 대통령 징계는 결국 정치적 판단의 영역일 것"이라며 "탄핵 이후 여론의 동향, 특히 지지층의 반응을 지도부가 살피고 결정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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