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지갤러리서 흐릿한 이미지 전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안내데스크에서 '작품 설명'이라는 책을 빌려볼 수 있다. 이미지만 있는 전시장에 이 책을 들고 가서 글과 그림을 비교해 가며 읽어도 좋겠지만, 아마 부질없을 것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페리지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Perigee 060421-170513'은 불친절하다. 지하 1층 전시장으로 내려가면 색색의 흐릿한 이미지를 담은 액자들이 걸려있을 뿐이다. 입구의 전시 리플렛이 '부질없을 것'이라고 장담한 대로다.
전시의 주인공은 그래픽디자이너 듀오인 '슬기와민'이다. 부부인 최성민(46) 서울시립대 교수와 최슬기(40)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가 팀을 이룬 이 그룹은 가장 주목받는 젊은 디자이너 중 하나다. 그동안 이들의 작업 대상은 전시 도록이나 비엔날레 포스터, 책 표지처럼 활자나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것들이었다. 2년 전부터 시도했다는 이번 전시 이미지들과는 대척점에 있다.
"우리가 평소 하는 일과 어느 정도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주어진 정보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일을 해왔어요. 의도가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늘 의도대로 관리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상태를 흥미롭게 느꼈어요."(최슬기)
최슬기 작가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인프라 플랫'이라고 칭하는 작업 개념을 설명했다.
'인프라 플랫'은 듀오가 마르셀 뒤샹의 개념에서 차용해 만들었다. 과잉 정보나 스마트폰을 매개로 한 소통 강박 등이 지나치다 못해 깊이가 없게 만드는, 즉 세상을 납작하게(flat) 만드는 순간을 이른다. '슬기와민'은 자신들이 작업했던 포스터와 전단, 엽서 등을 극도로 확대함으로써 흐릿한 이미지만 남기는 식으로 '인프라 플랫'을 구현했다. 이 작품들에는 '단명자료'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시는 5월 13일까지. 문의는 ☎ 070-4676-7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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