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주자들 앞다퉈 '전속고발권 폐지' 공약…전면적 조직 개편 주장도
박 前대통령 파면 이후 공정위 개혁 요구 목소리 힘 실려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야권 대선주자들이 내 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공약의 현실화 가능성이 더 커졌다.
대기업 고발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시민단체와 야권에서 주장해 온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주장은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에 공정위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힘을 받고 있다.
특히 공정위가 삼성 순환출자 해소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더해 청와대 지시로 CJ를 표적 조사했다는 주장까지 나와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위상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 '순환출자' 삼성 주식 매각량 줄여줬나…위원장 검찰 소환 '수모'
공정위는 정책 입안·집행이 주 업무인 일반 부처와 달리 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 불공정행위 등을 적발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사정기관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공정위가 다루는 정책들은 상당수가 시장 경쟁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규제하는 것들이 대다수다.
권력자가 공정위 조사를 빌미로 기업들을 압박하거나 반대로 특혜를 줬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런 공정위의 남다른 위상과 관련이 있다.
13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강화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처분 주식 수를 줄여 삼성에 특혜를 줬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공정위가 청와대 지시를 받고 순환출자 강화 해소를 위해 삼성SDI가 처분해야 하는 통합 삼성물산 주식 수를 1천 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여줬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공정위는 특검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하고 정재찬 위원장과 김학현 전 부위원장이 직접 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수모까지 겪었다.
1981년 공정위가 설립된 이후 현직 위원장이 사법당국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공정위의 삼성물산 의무처분 주식 수 감축 등 특혜성 결정을 지시한 것으로 파악했다.
삼성이 최순실·정유라와 미르·K스포츠재단에 주기로 한 돈이 모두 뇌물로 규정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특혜성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최순실 국정농단을 주된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청와대의 공정위 의사결정 과정 개입 등 특검의 수사 결과가 사실일 가능성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 '좌편향 영화제작' CJ 표적조사, 삼성 봐주기…끊이지 않는 의혹들
공정위의 조사나 심사 과정에서 외압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청와대가 '좌편향' 영화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이미경 CJ 부회장을 물러나도록 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공정위에 CJ 표적 조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공정위는 2014년 CJ E&M의 불공정행위 혐의 조사에 착수했지만 중대한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그해 12월 시정명령만 내리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당시 시장감시국장으로 사건을 총괄한 A국장은 이후 서울사무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청와대 불시 감찰에서 근태 불량 직원에 대한 관리감독 소홀 문제가 지적돼 퇴직했다.
공정위가 청와대의 외압으로 CJ에 경징계를 내린 담당 국장을 퇴직하게 했다는 '찍어내기'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A국장의 관리감독 소홀 문제가 퇴직할만한 사유인가를 묻는 말에 "사퇴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답해 퇴직 과정에서 석연찮은 부분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 합병 심사 과정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해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기도 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7월 '조만간 (양사의 기업결합 심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가 발송된다'는 언론 보도에 '발송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가 2시간 뒤 심사보고서를 발송해 빈축을 샀다.
또 '정확하고 공정한 심사'를 명목으로 7개월이나 결론을 내리지 않고 사건 심사를 끌어왔지만 양사가 반론권 보장을 위해 각각 요청한 2·4주의 의견서 제출기한 연장을 불허하기도 했다.
당시 심사 과정이 길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이해관계가 걸린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청와대 등 권력 주변을 맴돌며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 차기 대선주자들, 공정위 개혁 한목소리…'전속고발권 폐지 1순위'
공정위가 권력형 비리에 개입한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자 최근 차기 대선주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전속고발권 폐지 등 공정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는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재판에 넘길 수 있도록 한 제도로 1981년 공정거래법 시행과 함께 탄생했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이들의 전속고발권 폐지 공약은 머지않아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다음 정부는 인수위원회 과정이 없기 때문에 공정위 입장에서는 전속고발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수단도 마땅치 않다.
현재 전속고발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대선주자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공정위의 기능 강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 뿐 공정위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다른 후보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검찰 역할을 하는 공정위 사무처와 법원 역할을 하는 위원회와의 관계를 재정립해 상호 독립성을 높이도록 조직을 정비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등 권력기관이 공정위 수뇌부를 통해 공정위의 불공정행위 조사에 개입하는 일이 없도록 일종의 '차단벽'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현재 위원회는 사무처의 조사 과정에 가급적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법적으로 공정위 사무처는 위원회의 하부 조직으로 명시돼있어 위원장이나 부위원장이 사무처의 조사에 개입해도 제한할 방법이 없다.
박 의원은 "현행 조사와 판결이 동시에 이뤄지는 위원장-부위원장-사무처장의 수직적인 구조는 마치 판사와 검사가 함께 있는 것과 같다"라며 "대심제 위원회와 사건을 조사하는 사무처로 분리 운영하도록 하는 관련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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