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께 국내출간 앞두고 판권경쟁…"불황에 검증된 작가에 더 매달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작품세계 분석한 책 잇따라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9)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騎士團長殺し)'가 출간되면서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 발매일인 지난달 24일 0시 팬들이 서점 앞이 장사진을 이루는가 하면 작품이 공개된 이후에는 난징 대학살에 대한 소설 속 언급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하루키 고정독자층이 두터운 국내에서도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우선 국내 판권을 따내기 위한 출판사들의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제살깍기식 과다경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쪼그라든 출판시장에 숨통을 틔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9일 출판계에 따르면 하루키 신작의 한국어판은 올 여름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시판 전까지 소설 내용을 철저히 비밀로 하다가 현지 출간 이후 에이전시를 통해 판권을 입찰에 부친다. 이달 24일 국내 판권 입찰이 마감되면 작가 본인이 다음달께 한국어판 출판사를 결정할 전망이다. '1Q84'(2009∼2010)를 낸 문학동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를 출간한 민음사 등 대형 문학출판사들을 비롯해 하루키 책을 낸 적 없는 출판사 몇 곳도 신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계약금 성격으로 미리 작가에게 지급하는 선인세다. 하루키 소설의 선인세는 1990년대만 해도 수백만원 수준으로 알려졌지만 2000년대 들어 수억원대로 뛰기 시작해 2013년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16억원대를 기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번 신작은 선인세가 20억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작가 인세를 10%로 계산하면 1만5천원짜리 책을 130만 부 이상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는다. 국내에서 수십억원의 현금조달 능력을 갖춘 출판사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하루키는 국내외 작가 중 가장 많은 고정 독자를 보유한 작가로 꼽히지만, 급격히 축소된 한국 문학출판시장에서 신작이 과연 100만 부를 훌쩍 넘길지는 미지수다. '1Q84'는 200만 권 안팎 팔리며 '대박'을 터트렸지만 '색채가 없는…'은 40만 부를 조금 넘기는 등 하향세도 감지된다. 최소한 국내에서는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하루키를 제친 지 오래라는 말도 나온다.
한 문학출판사 영업담당자는 "하루키는 부침이 심한 작가"라며 "송인서적이 부도난 이후 올 여름은 그저 생존을 위해 버티는 시기다. 한국인이 노벨문학상을 타지 않는 한 당분간은 100만 부를 넘기는 책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학출판 시장의 침체가 오히려 판권 경쟁을 심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하루키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낸 현대문학 관계자는 "신작이 '1Q84' 등 전작만큼 대중적인 작품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워낙 책이 팔리지 않으니까 기본적으로 판매부수가 보장된 작가에게 매달리게 된다. 선인세가 높아지는 데 대해서는 출판계 안에서도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신작 발매에 맞춰 하루키의 작품세계와 인기 비결을 분석한 책들도 잇따라 나왔다. 일본 문예비평가 사이토 미나코는 '문단 아이돌론'에서 하루키 소설이 일종의 인터랙티브 게임이라고 말한다. 하루키 읽기가 작품 속 숨겨진 의미를 찾는 일종의 게임이 되면서 작가도 더 많은 수수께끼를 내며 독자 반응에 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 편집자이자 평론가인 유카와 유타카, '하루키 전문기자' 고야마 데쓰로가 함께 쓴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오후'는 하루키 소설이라는 게임의 실제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들은 각자 칼럼과 대담을 통해 하루키의 문제와 작품에 담긴 의미, 자주 등장하는 재즈음악 등 소품까지 분석한다.
저자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4'에 대한 인식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며 작품 속 숫자 '4'를 찾는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등장인물들이 네 차례 성관계를 하고 '댄스 댄스 댄스'에는 호텔의 16층(4×4)이 나온다는 식이다.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작품에 등장하는 '8월15일'을 전부 찾아 작가의 역사인식을 유추하기도 한다.
"세계에 공통된 기반인 신화를 의식한 이야기. 알지 못하는 이계(異系)와 관계성을 여는 폭넓은 언어의 이야기. 그리고 역사를 냉정하게 의식하는 이야기. 바로 이런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인데, 그 세계야말로 오늘날 독자가 찾고 있는 이야기 세계가 아닐는지."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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