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브라질…법치(法治)전통으로 혼란 최소화

입력 2017-03-12 08:10  

대통령 탄핵 브라질…법치(法治)전통으로 혼란 최소화

신속한 새정부 구성으로 국정공백 없애…국가통합·경제위기 탈출

탄핵 정당성 논란은 지속…부패 척결·빈부 격차 해소 등이 관건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통신원 = 2016년 8월 마지막 날.

브라질 상원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그해 3월부터 본격화한 탄핵정국이 5개월 만에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브라질 헌정사상 첫 여성대통령인 호세프는 1992년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전 대통령에 이어 24년 만에 탄핵으로 쫓겨난 대통령이 됐다.

이는 호세프 개인의 정치적 몰락에 그치지 않았다. 좌파 노동자당(PT) 정권이 14년 만에 막을 내리고 보수우파 정권이 출범해 브라질이 전체적으로 '우클릭'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좌파 호세프의 가세로 한때 중남미를 물들였던 '핑크 타이드'(Pink Tide: 온건한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물결)가 결정적으로 퇴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브라질은 연방의회가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다. 호세프 탄핵안은 지난해 4월 하원 통과후 5월 상원 특별위원회의 탄핵의견서 채택과 연방대법원장을 재판장으로 하는 탄핵심판, 8월말 상원 전체회의 표결로 탄핵을 확정됐다. 브라질은 삼권 분립 원칙에 따라 의회가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호세프 탄핵으로 브라질 사회는 심한 몸살을 앓았다.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이 호세프 탄핵을 지지했고, 탄핵 결정에 앞서 자진해서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65%에 달했다.

탄핵 찬-반 시위대는 상대방을 향해 적개심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범죄자들로부터 브라질을 지켜야 한다"는 '탄핵 지지' 목소리와 "브라질의 수치이자 민주주의 위기"라는 '탄핵 반대'가 맞섰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가 정착된 브라질에서 평화적 시위전통에 따라 물리적 충돌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으나 극단적인 극론 분열로 치달았다.

정치권은 쿠데타 논란에 휩싸였다. 호세프가 정치권의 탄핵 시도를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며 조기 대선을 통한 정국혼란 해법을 제시하자 미셰우 테메르 당시 부통령 등 탄핵을 주도한 우파 진영은 "이거야말로 쿠데타"라고 반박했다.

남미대륙 사상 첫 하계올림픽인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대통령 탄핵사태에 외부 시선은 곱지 않았다.

외국 언론은 호세프가 부패에 연루됐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회계법 위반이라는 애매한 사유로 추진된 탄핵은 명분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중남미 좌파 진영은 호세프 탄핵을 '제도적 쿠데타'로 규정했고, 남미지역 국제기구들은 브라질에 제재를 경고했다.





대통령 탄핵 사태가 초래한 혼란을 잠재운 것은 무엇보다 법치(法治)에 대한 신뢰였다.

호세프는 탄핵안 가결 하루 만에 대법원에 탄핵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변호인단은 1988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에 공적자금을 임의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탄핵안 가결을 무효로 하고 탄핵심판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세프는 프랑스 언론과 회견에서 "소수의 과두정치 세력이 벌인 거짓과 위선의 정치 전쟁이며 라틴아메리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호세프 측이 제기한 탄핵무효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호세프는 대법원 결정을 깨끗하게 수용했다. 그러고 나서 브라질리아 대통령궁을 미련없이 떠났다.

정·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탓에 새 정부 구성이 빨랐던 점도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5월 중순 탄핵 절차가 시작돼 호세프의 직무가 정지되자 테메르 부통령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새 정부를 구성해 국정의 연속성을 유지했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최종가결되자 테메르 대행은 곧바로 정식 대통령에 취임했고 대대적인 개각과 함께 개혁 과제를 제시하며 정국 안정에 주력했다.

다행히 경제가 사상 최악의 위기 국면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면서 대통령 탄핵 사태가 초래한 충격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으로 표시되는 브라질의 국가위험도가 개선되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해 호세프에 대한 탄핵 압박이 가열될 무렵 브라질의 CDS 프리미엄은 500bp까지 치솟았으나 현재는 220bp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런데도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쫓아내고 별도 선거 없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걸 두고 탄핵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아 또 다른 정국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호세프 탄핵 이후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잇달았다. 시위대는 테메르 퇴진과 새로운 대선을 촉구했다. 2010년과 2014년 대선에서 호세프와 러닝메이트를 이룬 테메르 역시 호세프와 마찬가지로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테메르 정부가 경제 회생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여론조사에서 테메르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간신히 한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테메르 개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2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핵사태가 마무리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째지만, 거리에서는 여전히 정치개혁·부패척결·빈부격차 완화를 주문하는 주장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탄핵 사태의 빌미가 된 요인들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면서 개혁을 추진하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파울루 주립대학(USP) 경제경영대학(FEA)의 지우마르 마지에루(54) 교수는 "대통령 탄핵이 모든 것을 일시에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대통령 탄핵 사태가 남긴 후유증을 극복하고 정치·사회적 변화와 경제 도약을 이루려면 강력한 개혁 의지와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fidelis21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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