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한달] '용서 못 할' VX공격…국제사회 제재는

입력 2017-03-12 07:10  

[김정남 암살 한달] '용서 못 할' VX공격…국제사회 제재는

"北배후 명확해지면 김정은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도 가능"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김정남 암살사건은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반인륜적인 범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례다.

특히 대량살상용 화학무기의 원료인 맹독성 신경작용제 VX를 하루에도 수만 명이 이용하는 공개된 장소인 국제공항에서 그것도 민간인을 상대로 사용했다는 점은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이번 사건을 수사해온 말레이시아 경찰은 사망한 김정남의 얼굴에서 채취한 표본을 과학기술혁신부 신하 화학국에 보내 분석한 결과 'VX'로 불리는 신경 작용제 '에틸 S-2-디이소프로필아미노에틸 메틸포스포노티올레이트'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또 사체 부검을 담당한 말레이 보건부도 김정남의 사망 원인을 VX 중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치사량인 10㎎이 넘는 VX가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신속한 수사를 통해 범행을 직접 실행한 2명의 외국인 여성을 체포했고, 이들을 포섭해 범행을 지시한 8명의 북한 국적자를 용의 선상에 올렸다.

북한국적 용의자 중에는 외교관 신분으로 현지에서 활동해온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도 포함돼 있다.

이는 북한국적 용의자 절반이 범행 직후 말레이시아를 빠져나갔고, 유일하게 신병이 확보됐던 화학전문가 리정철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정황이다.

범행에 사용된 VX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강력한 신경작용제로 그 독성이 사린 가스의 100배에 달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VX를 화학전에 사용되는 가장 강력한 신경제로 분류하고 있다.

지난 1991년 걸프전 종전을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채택한 결의 687호는 전후 이라크가 제네바 협정에 따라 생화학 무기와 사거리 150㎞ 이상의 탄도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WMD)를 조건 없이 폐기하도록 규정했다. 폐기 대상 WMD 가운데는 VX도 포함돼 있다.

이는 VX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화학무기로 쓰였다는 주장 때문이다. 1988년 당시 이라크가 50t이 넘는 VX를 생산했으며 사담 후세인 정권이 이를 반정부 세력인 쿠르드족의 근거지에 살포해 수천 명을 사망케 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1993년 체결된 유엔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은 연간 100g이 넘는 VX를 생산·비축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금지된 끔찍한 화학무기를 민간인에게 그것도 다중 이용시설에서 사용한 북한에 대한 규탄과 제재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우리 정부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제네바에서 열린 제34차 유엔 인권이사회와 군축회의(CD) 등에서 VX를 이용한 북한의 김정남 암살을 거론하고, 이런 범죄가 국제인권규범의 심각한 위반이며 국제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또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집행이사회에서는 북한이 김정남 암살에 VX를 사용한 것이 CWC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이런 우리 정부의 움직임에 발맞춰 국제사회도 VX까지 동원한 북한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조사와 제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188개 회원국을 둔 OPCW도 VX를 동원한 북한의 김정남을 암살 의혹에 대한 조사를 고려하고 있다. 또 미국 정부는 VX를 사용해 김정남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는 북한에 대해 테러 지원국 재지정 검토에 착수했다.

무모하고 잔인한 범행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며 범행을 전면 부인하는 북한의 행태에 분노한 말레이시아도 이런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최근 유엔 제네바 사무국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 말레이시아 대표는 김정남 암살사건을 언급하며 "북한 국적 남성이 공항에서 화학무기인 VX로 피살되는 사건이 있었다. 국제사회와 이 사건을 협력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VX를 동원한 민간인 암살의 경우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길 수 있는 반인도적 범죄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자문 변호사인 나디야난담 시바난단은 최근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신경가스 사용이 확인된다면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라며 "그들(북한)이 배후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심지어 ICC에 그를 넘기는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남이 살해된 것 자체는 ICC가 다루는 반(反)인도 범죄에 해당하지 않지만, 암살에 사용된 물질이 대량파괴무기로 분류된 VX 신경작용제이기 때문에 ICC 제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meola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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